
대통령 선거 정국이 뜨겁다. 6·3 대선을 앞두고 민심을 겨냥한 공약과 슬로건이 쏟아지고 있다. 여야의 경선이 가열되면서 경선 후보들이 내놓는 수사가 연일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가상 대결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유권자들의 시각도 다양하다. 대통령이 차지하는 지위와 권력을 감안할 때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다 탄핵 이후 치러지는 대선이라 진영마다 민심의 흐름을 주시하면서 승리 방정식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여덟 번의 대선을 치렀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우선 지역주의 투표 행태다. 여덟 번의 대선 가운데 4번의 정권 재창출과 4번의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보수당 입장에선 5명의 대통령을, 민주당계에선 3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8명의 대통령 중 6명이 경상도 출신이다. 호남의 김대중과 서울의 윤석열을 제외하고 모두 특정 지역 출신이다. 유권자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점도 있으나 지역주의 투표 행태가 크게 작용했다.
단일화 여부를 빼놓을 수 없다. 역대 대선을 보면 분열한 진영이 패했다. 이념적 지형이 분할돼 어느 쪽이든 단일 후보가 나올수록 유리했다. 일대일로 격돌한 16대와 18대 대선을 제외하면 13대, 15대, 19대, 20대 대선에선 같은 진영의 분열은 고배를 마셨다. 이례적으로 14대와 17대 대선에선 보수진영의 분열에도 김영삼, 이명박이 이겼다. 하지만 이념적 지형이 대립하는 요즘 정치 상황을 고려하면 같은 진영의 후보 난립은 승리가 쉽지 않다.
민주화 이후 대선에서 또 주목할 부분은 충청권 표심이다. 이 지역의 민심을 잡은 후보가 예외 없이 당선됐다.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 간의 경쟁이 치열할수록 충청권이 당락의 승부처였다. 이미지 창출 전략도 관건이었다. 13대 대선에서 노태우의 승리를 이미지 선거의 결과로 꼽는다. 전두환 군사정권이 창당한 민정당 대표로 출마했지만 인기 없는 민정당의 이름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어린 소녀를 안고 있는 자상한 할아버지나 이웃 아저씨 등 ‘보통사람’의 이미지를 연출하는 데 성공했다.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은 기타 치는 장면이나 눈물을 흘리는 감성적 접근을 시도, 대박을 터뜨렸다.
슬로건은 선거전의 백미였다. 민주화 이후 대선에서 ‘이제는 안정입니다’ ‘신 한국 창조’ ‘경제를 살립시다’ ‘새로운 대한민국’ ‘실천하는 경제대통령’ ‘준비된 여성대통령’ ‘나라를 나라답게 든든한 대통령’ ‘내일을 바꾸는 대통령’ 등이 동원돼 성과를 거뒀다. ‘가족이 행복한 나라’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 ‘다시 뛰자 대한민국’ ‘반듯한 대한민국’ 등도 유권자의 눈길을 끌었다. 이런 슬로건은 시대정신과 국민 정서를 반영한 것은 물론 후보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보여줘 지지도 상승으로 이어가는 데 유용했다.
여야가 세 결집에 사활을 걸고 있다. 개헌, 대통령실 이전, 국회 전부 이전, 행정수도 이전, 국회 세종 시대, 5대 메가폴리스, 모병제, 상법 등 공약 선점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교통망과 관광 인프라 확충 등 도내 유권자를 겨냥한 공약도 나왔다. 자유, 번영, 공정, 정의, 투명, 통합, 혁신, 시대, 변화 등의 키워드를 동원한 수사가 넘친다. 첨예한 진영 구도 속에서 외연을 조금이라도 더 확대해 중도층과 같은 스윙 보터를 자극하려는 의도다.
대선이 36일 앞으로 다가왔다. 조만간 대선 주자가 확정되면 단일화 여부를 비롯해 공약과 슬로건 등 승리 방정식이 더 구체화될 것이다. ‘좋은 슬로건 하나가 100분의 연설이나 1,000명의 선거운동원보다 낫다’는 얘기가 있다. 20, 30대가 슬로건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연구도 있다. 진영이 격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슬로건과 공약이 선거정치의 장식품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중요한 것은 승리 방정식을 냉정하게 읽는 유권자의 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