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경북 의성에서부터 80여 ㎞를 달려 영덕 바닷가에 도달한 대형산불은 10만㏊의 산림뿐만 아니라 사망 27명, 민가를 포함한 건축물 4,000동 이상이 소실되는 역대 최악의 피해를 줬다. AI와 빅데이터를 필두로 한 첨단 과학의 시대에도 대형산불은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커지고 있으니, 비정상적일 때 칭하는 괴물이라는 단어를 붙여 ‘괴물 산불’이라는 용어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모든 현상은 차분히 살펴보면 기본 원리가 적용되기 마련이어서 대형산불을 화재발생이론으로 분석해 대책을 논의해 보고자 한다.
산불을 포함한 모든 화재는 가연물, 산소, 그리고 점화원이 만나서 발생한다. 첫 글자만 따서 가산점이라고 불리고 화재의 3요소라고 하는데, 셋 중 하나만 제거(조절)하면 화재는 발생하지 않거나 꺼지게 된다. 산불을 흙으로 덮어서 끄는 것은 산소를 차단하는 방법이며, 산에 라이터와 같은 화기를 갖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는 점화원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렇게 화재 예방과 진화는 가연물, 산소, 점화원 이 세 가지를 통제하는 데에서 풀어진다.
첫 번째 요소인 가연물을 화재로부터 안전하게 관리하려면 가능하면 불에 잘 타지 않는 성분으로 만들어야 한다. 다중이용시설의 내장재를 방염제품으로 사용토록 강제하는 것이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대형산불이 발생하는 지역의 가연물인 산림을 보면 안타깝게도 잘 타는 숲으로 형성되어 있다. 자연 상태의 숲은 소나무와 활엽수, 키 큰 나무 작은 나무들이 섞여 있는 혼합림인데, 송이 숲을 만든다는 이유 등으로 소나무만 두고 활엽수와 키 작은 나무를 베어버린 인위적인 노력으로 소나무 단순림으로 바뀌었다. 소나무는 기름 성분이 많아 산불에 취약한 수종인지라 우리 숲의 소나무 점유율 증가는 큰불이 발생하기 좋은 상태의 가연물로 산림을 변화시킨 측면이 있다.
두 번째 요소는 산소 공급이다. 우리나라는 지형적 영향으로 봄철이면 강한 남서풍이 부는데 이는 산소 공급원이 되어 대형산불 위험을 높인다. 여기에 더해 산에 임도를 내니 바람길이 형성되고, 숲 가꾸기 사업을 통해 키 작은 나무들을 베어내고 나무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주니 산소 공급이 더 수월해져 산불의 확산 속도를 빠르게 하는 조건을 형성했다. 송이 숲 만들기와 같은 소나무 중심 조림은 산림을 타기 좋은 가연물로 만들었으며, 작은 나무들을 베어내는 숲 가꾸기와 임도의 건설은 숲으로 산소 공급을 높여 큰 산불이 되기 쉬운 여건을 만들어 왔던 것이다. 여기에 마지막 요인인 점화원이 공급되면 산불은 어김없이 대형화된다.
오랜 기간 산불 예방을 ‘불씨주의’에 주력했으나 이는 화재의 3요소 중 점화원이라는 한 가지만 통제하는 대책이었다. 이제라도 화재의 두 요소인 가연물과 산소를 통제하는 산불예방정책이 준비돼야 10년, 20년 후에 닥쳐올 괴물보다 더 커질 대형산불을 막을 수 있다.
다행히 2019년 강릉 옥계 산불피해지에서 벌채와 인공조림 없이 자연조림을 선택한 일부 지역은 활엽수가 스스로 싹을 틔워 조림지역에 심은 나무보다 더 크게 성장하고 있다. 산불을 겪은 자연 스스로가 불타기 쉬운 소나무보다 수분함량이 높아 불에 강한 활엽수로 숲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대형산불을 넘어 괴물처럼 커진 산불의 원인을 건조강풍에서만 찾기보다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개입이 가연물과 산소라는 화재 요인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닌지 면밀히 살펴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