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붉게 그을린 얼굴에 파인 주름이 깊다. 동해의 거센 바람과 소금기 어린 파도를 견디며 살아온 얼굴들이 마치 바위처럼 굳어 있다.
이상원 화백의 ‘동해인’ 연작은 단순히 어부나 농부의 초상화를 그린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반도의 동쪽 끝자락에서 시대의 풍랑을 온몸으로 맞으며 살아온 강원도 민중들의 집단 초상이라고 할 수 있다.
춘천에서 태어난 이상원 화백.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그는 한때 간판장이이자 초상화가로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수천 점의 초상화를 그리며 생계를 유지했지만, 그의 붓끝이 결국 머문 곳은 사람이었다.
삶의 무게가 깃든 얼굴. 그 갈망이 ‘동해인’ 연작으로 피어나게 된다. 그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동해 바닷가였다. 사나운 바람을 가르며 그물 짊어진 어부들의 모습에서, 이상원 화백은 인간 존재의 원형을 발견했다. 거친 풍랑 속에서도 노를 놓지 않는 손, 바다를 응시하는 눈빛 속에 그는 삶의 본질을 담았다.
이 연작을 시작한 것은 환갑을 넘긴 60세 무렵이었다. 젊은 시절 전쟁의 소용돌이를 지나며, 또 생계를 위해 하루에도 수십 장씩 얼굴을 그리던 시절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자신이 진심으로 그리고 싶은 얼굴을 찾아냈다.
이번에는 세상의 주문이 아니라, 스스로 마주하고 싶은 사람들의 주름진 손마디와 햇볕에 바랜 옷자락을 화폭에 올렸다. 그래서 이상원 화백 특유의 극사실주의 기법은 ‘동해인’에서 절정을 이룬다. 상업 초상화를 그리던 시절 갈고닦은 묘사력은 이 연작에서 인물의 내면에 까지 다다른다.
굳은살이 박인 손, 소금기 스민 얼굴, 휘어진 어깨까지 정밀하게 담긴 인물들은 마치 바로 옆에 서 있는 듯 생생하다. 하지만 그 정교함은 단순한 기술에 그치지 않고, 인물의 존재감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며 그가 지닌 예술적 깊이를 드러낸다. 먹으로 둘러싸인 배경은 담백하다. 소금기 어린 바람이 스며든 그 풍경 속에서 인물은 또렷이 부각된다. 그 존재 자체로 화면을 압도하는 것이다.
동해의 어부이자 한국 현대사의 거친 파고를 견딘 모든 민중의 얼굴이 된다. 특히 노년의 인물들을 그린 작품은 유독 강렬하다. 삶의 무게가 깃든 깊은 주름마다 세월의 서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바다를 마주한 바위처럼 삶의 고비마다 흔들리지 않고 버틴 이들의 눈빛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이상원 화백의 ‘동해인’은 단순한 인물화를 넘어 바다와 사람, 거친 삶과 묵묵한 인내가 어우러진 한 편의 대서사시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붓은 바다 냄새가 배어 있는 민중들의 얼굴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과 그들의 존엄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