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봄, 대한민국은 역사상 가장 큰 산불이라는 비극을 또 다시 마주해야 했다.
역대 최대 규모로 기록된 이번 경북 산불로 인해 서울시의 80%에 달하는 면적이 잿더미로 변했고, 8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천년고찰 운람사를 포함해 31건의 국가유산이 소실·훼손됐다. 국민들 모두 일상을 접고 산불이 하루빨리 꺼지기 만을 기도했고, 이재민들의 안타까운 사연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동안 여러차례 대형산불을 겪고 경험했던 삼척지역 주민들에게 다른 지역의 대형산불로 인한 피해는 남의 얘기가 아닌 우리들 얘기였던 것이다. 한순간 방심이 불러온 피해로 인한 고통이 얼마나 크고, 오래 가는 지 알기 때문이다.
열흘간의 아비규환 속 현장은 그야말로 우리 사회의 재난 방제시스템이 안고 있는 구조적 허점을 여실히 보여준 결과였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이와 같은 참사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해마다 건조경보와 함께 산불 피해 소식이 뉴스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있어 미온적이다. 하물며 국립산림과학원이 2024년에 발간한 책에 따르면 산불의 A부터 Z까지 모든 정보가 총망라되어 있었지만, 책 따로 행정 따로일 뿐 달라진 건 없었다.
우리나라는 면적의 약 62%가 산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찌 보면 늘 산불의 위험이 상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특히 침엽수림이 많은 지역은 수지와 기름 성분으로 인해 화재시 불길을 키우고 확산 속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주민들이 송이 채취를 위해 소나무 식재가 늘어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산불 취약성은 더욱 높아졌다. 반복되는 산불이 다시금 확인시켜 준 것은, 산불은 자연재해 이전에 ‘예방 가능한 재난’이라는 사실이다. 산불은 건조하고 강풍주의보가 발효되는 시기에 집중된다. 즉,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야말로 총력 대응이 필요한 시간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매년 산불 진화에 있어 반복된 문제에 발목을 잡힌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헬기 운용의 한계이다. 우리나라 산불 진화 헬기의 대부분은 특정 해외 제조사의 기종에 편중되어 있다. 이들 기종은 산불 진화보다는 군용·수송용으로 설계된 경우가 많아 급경사지나 민가 인근의 정밀한 진화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고, 고령 기체가 많아 안전성과 성능 모두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불 진화에 최적화된 헬기는 비용 문제로 번번이 미뤄지고 있다. 산림 복구와 이재민 지원에 투입되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생각한다면, 헬기 운용 확대와 기종 다변화야말로 더욱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소리 아니겠는가.
현재 산불 대응 체계 역시 지방정부의 책임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방화수 시설, 전문 진화 인력, 특화 장비, 임도 개설 등은 오로지 지자체의 역량으로만 해결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다. 지방자치단체 단독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이 문제에 대해 중앙정부는 지역 맞춤형 대응 체계를 갖추고, 산불에 강한 수종으로 단계적인 숲 개편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산불은 불이 꺼지더라도 일상으로 회복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은 당장 먹고 잠잘 수 있는 거처 뿐만 아니라 일상과 마음까지 복구해야 한다. 경제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심리 상담,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 등 사후 지원 또한 강화되어야 진정한 복구라 할 것이다. 불은 겨우 꺼졌지만, 우리가 다시 피워야 할 것은 ‘책임’이라는 불꽃이다.
우리가 살아갈 이 땅, 우리 지역, 소중한 공동체를 지키는 절박한 책임감만큼은 절대 꺼지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