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에 발길이 닫는 순간, 도시의 숨결은 달아오른 철판 위에서 먼저 느껴진다.
소양강 물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오후가 되면, 매캐하면서도 달큰한 냄새가 골목을 따라 흐른다. 누군가는 산책을 하듯, 누군가는 이 냄새를 좇듯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향기를 따라가다 보면 지글지글, 불판 위에서 익고 있는 닭갈비를 만나게 된다. 춘천 닭갈비는 처음부터 거창하지 않았다. 돼지갈비 값이 치솟았던 1960년대, 비슷한 모양새로 식탁을 채울 수 없을까 고민하던 어느 식당 주인이 돼지 대신 닭을 철판 위에 올려놓으면서 시작됐다. 춘천시 중앙로 2가, 18번지(도로명 주소 : 춘천시 중앙로 59). 닭갈비의 발상지로 알려졌던 이곳엔 지금 다른 건물이 들어섰지만, 골목마다 스며드는 닭갈비 냄새와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그 첫 불씨가 피어오르던 순간의 기억이 여전히 살아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춘천의 닭갈비가 명성을 얻으면서, 역사의 시계바늘은 아주 오래전을 가리키게 된다. “1400년 전 신라시대 부터 닭갈비가 존재했다”는 설이 그것. 누구의 입에서 시작됐는지 알 수 없지만 상당히 널리 퍼져있다. 언론이 단골로 쓰는 표현이지만 그 근거는 찾기 힘들다. 기록은 커녕 구전조차도 희미하다. 그렇다고 춘천 닭갈비 원형의 뿌리가 아예 잘려나간 것은 아니다. 조선 시대의 연산군일기에는 ‘자계(炙鷄)’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구울 자(炙)’, ‘닭 계(鷄)’, 그대로 읽으면 ‘닭구이’다. 닭구이의 흔적은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1670년)’, ‘규합총서(閨閤叢書․1809년)’,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1924년)’ 등 다수의 요리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조리법을 보면 지금의 닭갈비와 묘하게 닮아 있다. 요리하는 과정만 놓고 보면 닭고기를 불에 구워 익히는 방식이나 일정시간 양념에 재워둔다는 점에서 닭갈비의 그것과 닮아있다. 특히 장을 바르고 익힌 후 초장 - 닭갈비는 고추장에 찍어 먹지만 - 에 먹는다는 방식까지 유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누군가는 묻는다. 그렇다면 춘천 닭갈비는 자계의 후예인가. 단정할 순 없지만, 불판 위에서 고기가 익어가는 풍경은 시대를 넘어 이어지는 요리의 본능 같은 것 아닐까 싶다. 때로는 이름을 달리하고, 때로는 불 위에 놓이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 닭을 구워 함께 나누던 시간은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물러 있었다. 춘천의 닭갈비는 오랜 기억 속 향기를 지금으로 이어왔다. 이 음식이 특별한 건 어쩌면 그 단순함에 있다. 양념 옷을 입은 닭고기, 큼직하게 썬 양배추와 고구마, 당면, 떡, 그리고 붉게 물든 양념장이 철판 위에서 어울려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 낸다. 숟가락으로 떠먹는 국물 요리와는 다르다. 닭갈비는 철판 위에서 익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완성되는 맛이다. 불판 앞에 앉으면 시간까지 함께 구워지는 듯하다. 익어가는 고기를 뒤집고 또 뒤집으면서 불과 양념이 만들어내는 마법을 기다리는 동안, 입안에는 이미 침이 고인다.
‘닭갈비’라는 이름을 두고는 한때 우스갯소리도 오간 적이 있다.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것이라며 “닭이 무슨 갈비냐”고 묻던 이들도 있었지만, 숯불에 구운 닭의 담백한 풍미와 양념의 깊이를 맛본 뒤엔 더이상 시비(?)를 걸지 않는다. 철판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내며 만드는 시간, 그 자체가 닭갈비의 맛을 결정짓는다. 탄탄한 식감 속에 스며든 양념, 약간의 매콤함과 달착지근함이 어우러지며 혀를 두드린다. 춘천의 닭갈비의 또 다른 모습은 숯불 닭갈비에서 찾을 수 있다. 생닭 그대로 구우면 뻣뻣할 것이라는 걱정도 잠시, 숙성된 양념에 푹 잠긴 닭고기를 숯불에 얹어 놓으면 육즙이 살아난다. 은근히 올라오는 숯향이 닭고기의 고소함을 품어내며, 불길을 따라 고기가 부풀듯 익어가는 모습이 먹는 이의 시선을 붙잡는다. 순살도 있지만 뼈째 구운 닭갈비를 손에 쥐고 뜯는 재미까지 더해지니, 맛도 맛이지만 그 한입이 주는 쾌감은 별미다. 원조 닭갈비가 숯불에서 시작된 점을 감안하면 그 맛이 남다를 수 밖에 없다.


명동 닭갈비 골목, 소양강변 닭갈비 거리, 온의동 닭갈비 거리와 낙원동 닭갈비 골목에 이르기까지. 춘천 곳곳에 자리한 닭갈비 골목과 거리들은 여행자들을 시나브로 모여들게 한다. 어디를 가든 가게마다 개성이 뚜렷하다. 식탁마다 작은 축제가 열리곤 한다. 가게 주인이 능숙하게 고기를 뒤집으며 “이제 드셔도 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여행자는 춘천의 풍미 속에 제대로 빠져들게 된다. 닭갈비라는 단순히 배고픔을 달래는 음식은 아니다. “칙~”하고 철판 위에서 볶아지는 소리, “달그닥~” 재빨리 뒤집는 손놀림, 그 사이를 비집고 피어오르는 매콤한 향기까지 오롯이 즐기는 문화다. 그렇게 춘천이라는 도시의 풍경이 그대로 식탁 위에 펼쳐진다. 강물처럼 흐르는 이야기, 불꽃처럼 피어나는 추억이 닭갈비 한판 위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도 닭갈비는 변하지 않았다. 처음 닭갈비가 탄생했던 그때처럼, 지금도 춘천의 닭갈비는 따뜻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닭을 고르고 양념을 바르고, 불판을 달궈 고기를 얹는 과정은 단순하지만 맛에는 소홀함이 없다. 춘천 사람들의 손끝에서, 닭갈비는 계절처럼 익어간다. 강원도의 찬란한 봄빛, 여름의 열기, 가을의 싱그러움, 겨울의 날카로운 추위가 모두 닭갈비 속에 녹아든다. 그래서일까. 춘천에 머무는 동안, 사람들은 꼭 한 번 닭갈비 가게를 찾는다. 미리 계획하지 않아도 좋다. 닭갈비 내음과 익어가는 소리가 길을 안내한다. 불판 위에서 피어나는 붉은 풍경이 춘천의 마음을 대신해 여행자를 맞이한다. 철판 앞에서 만나는 그 시간만큼은, 누구나 춘천 사람, 춘천 토박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