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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포럼]지역 회생 없는 폐광, 과연 정의로운가

권정복 삼척시의장

대한민국 산업화의 한복판에는 늘 석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석탄의 심장부에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이 있었다. 수십 년간 광부들은 어두운 갱도 깊숙이 몸을 던지며 나라의 성장에 헌신해 왔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작업을 하며 산업화시대를 만든 주인공이자 대한민국 경제 발전을 이끈 주역이다. 그들의 피와 땀이 없었다면 현재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국가는 이들에게 무엇으로 보답하고 있는가.

정부의 도계광업소 폐광이라는 결정은 단순하게 산업구조의 개편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 없다. 그것은 한 세대의 생존을 송두리째 흔드는 일이자, 수천명 도계 주민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중대한 사안이다.

대한민국의 산업화에 청춘을 바친 이들에게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정부의 말을 순진하게 믿었던 주민들에게 되돌아온 것이 결국 ‘폐광 통보’ 하나뿐이라면, 그것이 과연 정의로운 사회라 할 수 있을까. 그들의 희생과 헌신에 대해 국가는 어떤 방식으로 책임지고 있는지 묻고 싶다.

나아가 더 심각한 문제는 폐광 추진에 있어 대체 산업에 대한 계획조차 부재하다는 점이다. 이는 정부의 명백한 책임 회피이자, 지역사회를 무시하는 일방적 결정이다. 지역의 경제기반을 송두리째 걷어가면서 아무런 대안도 마련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회생이 아닌 사형 선고와 다름없는 것이다.

성공적인 폐광 대체 산업의 추진은 비단 지방자치단체만의 몫이 아니다. 부실한 대체 산업으로 인한 실업 증가, 복지 수요 확대, 인프라 방치 등의 사회적 비용은 결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함께 감당해야 할 문제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사회 전체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도계에는 100일이 넘도록 농성이 이어지고 있으며, 60일이 넘도록 곡기를 끊어가며 절박한 심정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절규에 응답한 대한석탄공사 관계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책임 있는 경영진은 단 한 차례도 농성장을 찾지 않았고, 공식적인 대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이는 단지 소통의 단절이 아니라, 지역과 주민을 외면한 구조적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도계 주민들은 일자리 사수를 넘어, 내가 살아온 터전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광부들은 말한다. “우리는 석탄을 캐던 사람이 아니라, 가족을 지키던 사람이었다”라고. 그들의 말에는 이 땅에서 인간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최소한의 절박함이 담겨 있다. 우리는 절대 그 외침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빠른 시일 내에 대한석탄공사와 정부가 현장과 직접 소통을 시작하고, 실질적인 대체 산업 및 지역 회생 방안을 마련하는 일이다. 산업의 전환은 지역과의 신뢰 속에서만 지속 가능하게 이뤄질 수 있으며, 도계가 직면한 지금의 위기는 국가 전체의 에너지 전환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중요한 교훈을 줄 수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도 소용없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경제적 논리를 잣대로 삼지 말고, 도계 지역 주민들을 위한 실질적이고 책임 있는 폐광 대책으로 그간의 진 빚을 갚아야 한다. 더 늦으면 대책이 아니라 변명이 될 뿐이다.

온 천지에 새 생명의 싹이 움트고 꽃이 만개하는 따스한 봄이다. 수년간 시린 겨울에서 멈춰버린 우리 도계 주민들에게도 설렘 가득한 희망의 봄볕이 가득히 쬐기를 다시 한번 간절하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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