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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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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국가 공동체가 지켜야 할 가장 근본적인 약속이다. 그러나 그 약속이 아무리 완전하게 쓰여 있더라도, 그것이 현실에서 실천되지 않는다면 결국 인쇄된 종이에 불과하다. 많은 나라가 훌륭한 헌법을 가졌지만 그 정신이 권력자와 시민에 의해 외면됐을 때 국가는 파국을 맞았다. ▼지난해 12월3일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뒤 벌어진 혼란은 헌법의 진정한 의미를 되묻게 한다. 계엄령의 정당성과 위법성에 대한 법적·논리적 검토보다는 자신이 지지하는 인물과 진영이 이 상황에서 유리한가 불리한가에 따라 판단이 갈렸다. 국민적 대립의 본질은 법의 문제라기보다 이해의 충돌이었다. 헌법재판소 선고 결과가 그동안의 여론조사와 달랐던 점이 이를 방증한다. 이러한 상황은 곧 ‘각자도생(各自圖生) 정치’의 산물이다. 공동체의 원칙보다 개인 또는 자신이 속한 단체의 생존과 이익이 앞서며, 헌법은 더 이상 모두의 약속이 아닌 어느 한편의 무기로서만 존재하기를 바란 셈이다. ▼‘살아 있는 헌법’이란 단순히 효력이 존재하는 문서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헌법을 공통의 기준으로 인식하고, 설령 불리하더라도 그 원칙을 존중하는 태도 속에서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그때 헌법은 단지 국가의 통치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윤리적 합의가 된다. 진정한 헌법 정신은 문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켜내려는 시민들의 합의와 실천 의지에 있다. 법 위에 군림하려는 권력은 언제나 존재해 왔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역사는 시민의 연대로 헌법을 되살렸다. “국민은 헌법을 수호할 최후의 보루”라는 말은 결코 비유가 아니라 진리다. ▼정파를 초월해 헌법 위반 여부를 냉정히 판단하는 힘. 그것이 민주주의가 위기를 이겨내는 유일한 길이다. 감정과 이해를 넘는 공동의 규칙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다음 위기 때도 우리는 분열된 채 혼란을 반복할 수 있다. 헌법이 살아 있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는 바로 우리 국민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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