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경제패권주의의 칼날은 서슬이 퍼렇고,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안위에 연연해하는 암울한 나날이 지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굳건하게 성숙한 의식으로 대한민국을 지탱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존경심을 표한다. 유난히 춥고 어두웠던 겨울도 결국 자연의 순리 앞에 꼬리를 감춰가고 있다. 이제 푸릇한 새싹들이 은밀하게 다양한 꿈과 희망을 안고 단단했던 흙을 밀어 올릴 것이다.
세상에 꿈과 희망이 없다면 사람들은 살아갈 수 있을까? 제주소년 오연준이 부른 ‘바람의 빛깔’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잊고 살아가는지 잠시 멍때리며 스스로 순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바람의 빛깔’은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의 주제곡에 오연준군의 가사를 덧붙여 만들어졌으며, 그중 ‘바람이 보여 주는 빛을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한 거죠’ 라는 가사는 매우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함의된 어휘를 나열해 본다면, 다양성, 가능성 그리고 가장 중요한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는 가치가 깃들어 있다.
그 미래의 희망은 바로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건강한 정신과 꿈을 품고, 사람이 중심이 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돌봄의 손끝에 온기를 넣고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길에 따뜻함을 담고자 한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데 있다. 그렇기에 아동 돌봄 정책을 수립할 때는 아동 전문가와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심사숙고해 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돌봄이 필요하다는 명목 아래 부처 간 성과 경쟁이 우선시되고 있다. 돌봄 정책이 정말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각 부처의 성과를 위해 수립된 정책인지 돌봄에 종사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고 속상함을 느낀다.
초교 ‘늘봄 정책’이 많은 부모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한 곳에서 배움과 돌봄이 같이 이루어져 아동의 안전성이 더욱 높아지는 데 있다. 늘봄 정책은 올해 2학기부터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총 13시간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아이들의 안전성 확보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나, 과연 학교라는 동일한 공간에서만 오랜 시간 있는 것이 최선인지는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아이들이 연속된 공간에서 정서적 환기를 갖지 못하고 장시간 머물러야 한다면, 공간의 이동을 통한 다양한 경험과 상호작용에서 올 수 있는 사회성, 정서적 안녕감을 배제시킬 우려가 크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아이들의 안전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그 중요성에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정서적 환기구를 마련해 줘야 한다. 이를 통해 아이들이 지닌 다양성과 개별성, 가능성 등 정서적인 측면을 배제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윤정 박사는 ‘체험적 정서성으로서 공간 분위기의 생성방법 연구’를 통해 헤르만 슈미츠와 게르노트 뵈메의 분위기이론을 고찰해 공간 분위기가 신체적 감지, 공간의 개별 사물들과 서로 관계를 맺음으로써 총체적인 공간 분위기를 산출해 낸다고 봤다. 이는 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앞에 언급했듯 아이들에게 다양성, 창의성, 가능성을 지켜주기 위한 다양한 공간사물을 제공해야 총체적 사고를 바탕으로 스스로 공간 분위기를 형성하는 능력을 길러줄 수 있고, 그들이 지닌 가능성과 다양성이 매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민관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고 모든 정책에 아이들을 중심에 놓고 보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의 저출산 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아동 돌봄 정책 역시 수립 방향이 명확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