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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4명이나 죽었는데 누구 하나 책임지겠다는 사람 없으니 황당하고 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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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진화대원·공무원 등 4명의 빈소 마련된 창녕서울병원 장례식장 눈물바다
정확한 사고경위 설명 요구…창녕군, 27일까지 애도기간 각종 행사 모두 중단

◇산림청 중앙사고수습본부가 경남 산청군 신안면에서 발생한 산불을 진화하기 위해 헬기를 비롯해 인력, 진화차량을 투입해 불길을 잡고 있다고 23일 밝혔다. 사진은 산불진화대원이 화재 현장에서 불을 끄는 모습. 2025.3.23 [산림청 제공]

"사람이 4명이나 죽었는데 누구 하나 책임지겠다는 사람도 없으니 황당하고 화가 납니다"

지난 21일 오후 경남 산청군 시천면 야산에서 발생한 대형산불 진화 도중 숨진 진화대원과 인솔 공무원 등 4명의 빈소가 마련된 창녕군 창녕서울병원 장례식장은 눈물바다였다.

화재 진화 현장에 투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산불진화대원 60대 A씨의 아내 김모(52) 씨는 아직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김씨는 남편을 누구보다 일에 적극적이고 정의로운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산불진화대원으로 일하면서 사람들과 잘 지내고 일도 재밌다며 남편이 매우 만족해했었다"며 "작은 일도 그냥 못 지나치는 성격이라 그날도 아마 마지막까지 정신없이 불을 껐을 것 같다. 그 순간 얼마나 뜨거웠을지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 중 유일한 공무원인 창녕군 소속 30대 B씨의 유족들도 황당하고 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유족들은 "우리 아들 어떡하노", "못 지켜줘서 미안하다"고 주저앉아 오열했다.

B씨 한 친척은 "그날 바람이 강하게 불었으면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서 투입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아직도 사고가 어떻게 하다 났는지 제대로 된 브리핑조차 듣지 못했다. 사람이 4명이나 죽었는데 누구 하나 책임지겠다는 사람도 없으니 황당하고 화가 난다"고 말했다.

B씨 직원들은 B씨를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직원이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 21일 오후 3시 26분께 경남 산청군 시천면 한 야산에서 불이 났다.산림당국은 인력과 장비 등을 투입해 진화에 나섰으나 산불이 확산하며 오후 6시 40분께 '산불 3단계'를 발령했다. 이 산불로 인근 점동·국동마을 주민 115명이 대피했다. [산림청 제공]

B씨와 1년간 같은 부서에서 일한 한 직원은 "불평불만 없이 항상 일에 의욕을 갖고 일한 직원으로 기억한다"며 "당시 강풍과 역풍으로 산불 진화 차량이 전소됐을 만큼 불길이 거셌던 것으로 들었는데 끝까지 업무에 최선을 다했던 B씨를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창녕군은 창녕읍 창녕군민체육관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하고 24일부터 4일간 운영한다.

또 오는 27일까지 5일간 애도기간으로 정하고 각종 행사를 모두 중단한다.

이날 빈소에 도착한 성낙인 창녕군수는 "우선 우리 지역 분들이 모두 예기치 않은 사고를 당하셔서 군수로서 죄송하게 생각하고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며 "산림청과 경남도에서 진화 작업 등을 관리하는 만큼 사망자들 장례와 부상자들 치료 등 군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예우를 다하겠다"고 애도를 표했다.

◇빈소에서 장례 지원 절차 등을 논의 중인 창녕군 공무원들

앞서 창녕군 소속 산불진화대원 8명과 인솔 공무원 1명은 이번 산청 산불 진화를 위해 지난 22일 오전 11시 30분께 산불 현장에 투입됐다.

그러나 산불을 진화하던 이들은 뜻하지 않게 산 중턱에서 고립됐다.

이후 산불진화대원 3명과 인솔 공무원 1명이 숨진 채 발견됐고, 나머지 산불진화대원 5명은 화상을 입은 상태로 구조됐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경남지역본부(이하 경남공무원노조)는 산불 현장 지휘 본부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경남공무원노조는 23일 입장문을 내고 "대형산불 진화 작업은 큰 불길이 잡힌 후에 공무원과 진화대원들이 방재 트럭으로 현장에 접근해 진화를 돕거나 잔불 정리 등에 투입하는 것이 상식이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산청 산불 현장에는 불씨가 사방에서 강하게 타오르는 상황이라 바람 세기와 방향 등 안전 기준을 고려해 인력을 배치해야 했지만, 현장 지휘 본부가 초기 진화에 급급한 나머지 무리하게 인력을 투입해서 발생한 사고가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전했다.

경남공무원노조는 "이번 사고를 중대재해로 규정한다"며 "산불 현장을 총괄 지휘한 경남도의 안전조치 의무 등 관련 법령 위반 여부에 대해 경찰의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전문적인 훈련과 장비 없이 공무원 산불 진화 동원을 당장 중단하고, 관련 자격을 갖춘 전문 직렬 신설 등 정부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경남 산청군에서 발생한 산불 사흘째인 23일 시천면 중태마을에 주택이 불에 타 주민이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2025.3.23 사진=연합뉴스

산림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기준 산청군 시천면 산불 진화율은 65% 수준이다.

산림청 중앙사고수습본부는 헬기 31대, 인력 2천243명, 진화 차량 217대 등을 투입해 불길을 잡고 있다.

산불영향구역은 1천362㏊이며 총 화선은 42㎞다. 이 중 15㎞를 진화 중이고, 27㎞는 진화가 완료됐다.

현재 산불 인접 지역 주민 수백 명은 마을과 멀리 떨어진 단성중학교 체육관 등에 대피한 상태다.

◇경남 산청군에서 발생한 산불 사흘째인 23일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태마을에 주택이 불에 타 주민이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2025.3.23 사진=연합뉴스
◇경남 산청군에서 발생한 산불 사흘째인 23일 경남 산청군 시천면 외공마을이 불에 타 있다. 2025.3.23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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