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개봉한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은 국민배우 최민식 씨가 도계중학교 관악부 지도교사로 부임해 개인적인 일상과 탄광촌 청소년들의 가정사, 꿈을 쫓아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 영화다.
낡은 악기, 찢어진 악보, 색 바랜 트로피, 초라한 현실에 처해 있는 관악부는 전국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강제 폐지될 위기를 맞고 있었고, 결코 우승을 장담할 수 없지만 아이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외면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고민을 고스란히 영화에 담았다.
그리고, 그렇게 길기만 했던 겨울이 지나 어느새 봄을 맞는 시간과 과정을 풀어냈다.
케니 G와 같은 연주자의 꿈을 갖고 있는 아이가 부모의 반대로 관악부를 나갈 위기에 처하자, 비 오는 날 탄광에서 관악부 아이들이 연주를 하며 위기를 헤쳐 나가는 과정 등이 감동적으로 표현됐다.
위기를 이겨내며 꿈과 희망을 얘기하던 광산 지역이 시름시름 앓고 있다.
오는 6월 국내 마지막 국영 탄광인 석탄공사 도계광업소의 폐광을 앞두고, 지역 주민들이 지난겨울 엄동설한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길거리에 나서 삭발과 단식으로 봄이 찾아오도록 생존권 투쟁을 벌이고 있다.
17일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투쟁에 나선 지 78일째, 정부 청사 앞 릴레이 1인 시위 67일째, 지역 주민 12명이 참여한 단식 릴레이가 40일째를 맞았다.
‘대체산업 쟁취, 석공 폐광 반대 공동투쟁위’는 정부가 주민들의 요구 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아 주민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정과제인 지정 면세점 설치와 조기 폐광 지역 경제 진흥 사업의 예비 타당성 조사가 하루빨리 통과돼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또 에너지 주권, 광물 자원, 채광·채굴 기술을 지켜낼 계획과 폐광 회생 대책 및 주거·안전·환경 대책을 논의할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정치권과 지자체의 노력으로 긍정적인 신호가 올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지만, 살얼음판을 걷는 지역 사회의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석공 장성광업소가 폐광된 태백시 인구는 지난해 초 3만 9,280여 명이었으나, 같은 해 7월부터 연말까지 670여 명이 감소했다.
도계광업소 폐광 이후 급격한 인구 유출과 지역 경제 침체 등 후유증이 우려되고 있으며, 강원도가 도계광업소 근로자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43.2%**가 폐광 이후 타 지역 이주의 의향을 밝혔다.
타 지역 이주는 이미 진행돼 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석공에 이어 대한민국 탄광 산업의 마지막 보루인 경동마저 폐광 논의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그동안 광산 지역은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다.
2000년 석공 중앙갱 폐쇄 방침 및 구조조정이 추진되자, 주민들은 영동선 철로를 점거하고 총시민 궐기대회를 벌였다.
경동 무연탄 재고로 회사가 위기에 처하자, 정치권과 주민들이 나서 화력발전소에 연료를 공급할 수 있는 길을 트기도 했다.
산업화 과정에서 경제 성장의 초석이 된 탄광 지역은 석탄산업합리화 조치 이후 지속적으로 구조조정의 과정을 거쳤다.
도계읍의 인구는 1988년 4만 148명에서 석탄산업합리화 이후 1999년에는 1만 7,448명으로 급격히 줄었고, 같은 기간 학교 수는 14개에서 9개로, 학생 수는 1만 12명에서 2,906명으로 감소했다.
광산은 12개에서 석공 도계광업소와 경동 등 2개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근로자 수도 6,705명에서 2,906명으로 급격히 줄었다.
탄광 지역이 절대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강추위와 폭설로 긴 겨울을 보낸 우리 곁에 봄이 왔다.
하지만 광산 지역은 말 그대로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상황이다.
마음속은 여전히 한겨울이다. 마음속에도 봄이 찾아오길 학수고대한다. 도계중학교 교정에 꽃피는 봄이 다시 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