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척지역 항일운동을 이끈 지도자들의 1920~1930년대 활동 모습을 담은 사진이 3·1절 100주년을 앞둔 2019년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사진에는 한 초가집 앞에 다섯 명의 남성이 앉거나 서 있는 모습이 포착돼 있고 사진 오른편에 ‘朝鮮日報社 三陟支局(조선일보사 삼척지국)’이라는 세로 푯말이 또렷하게 보여 이곳이 삼척임을 알 수 있게 했다. 강원일보가 단독 입수해 처음 공개한 이 사진은 삼척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기자로도 활약한 오원모의 유품에서 확인된 것이다. ▼삼척 근덕면 출신인 오원모는 삼척보통학교(현 삼척초교) 2학년 시절 독립선언서를 입수한 4학년생 김달하, 동기생 심부윤 등과 함께 1919년 4월14일 거사를 계획, 4월15일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삼척시지와 실직문화,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 등의 자료에는 김달하가 1903년 2월생, 오원모가 1904년 12월생, 심부윤이 1905년 2월생으로 기록된 것을 감안할 때, 만 14~15세의 학생들이 만세운동을 벌인 것이다. 중학생 나이에 불과했다. ▼삼척지역 또 다른 대표적인 항쟁사건은 임원리 측량사건이다. 임원리 측량사건은 일본이 조선의 토지를 수탈할 목적으로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세워 1910년부터 1918년까지 토지조사를 강행한 것에 대항한 임원리 주민들의 항쟁사건이다. 당시 3명의 주민이 숨지고 70여명이 끌려가 옥고를 치르다 옥사하거나 고문 후유증으로 불편한 몸으로 생활하다 사망한 역사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다. 100년이 훌쩍 지난 2015년에서야 ‘삼척임원리항일운동선양사업회’가 구성되고 학술세미나가 개최되는 등 일제강점기 농민항쟁의 대표적 사건인 임원리 측량사건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을 맞는 해다. 3·1절을 맞아 삼척지역의 항일투쟁사를 되새기고, 특별하게 만드는 건 우리들의 책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반목과 갈등으로 치닫는 정치상황 속 우리들은 ‘역사를 잊고 사는 게 아닐까’ 하는 반성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