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는 설이 시작되는 게 섣달 그믐밤부터였다. 온 집 안에 불을 환히 밝혀 놓고 밤을 새워가며 조왕신을 기다렸다. ‘수세(守歲)’라는 풍습이다. 조왕신이 부엌에서 식구들의 행동거지를 지켜보다가 섣달 스무나흗날 승천해 옥황상제께 고한 후 그믐밤에 다시 온다고 믿었다. 조왕신을 기다리지 않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들 했다. 졸린 눈을 비비고 있는 중에 들려오던 복조리장수의 목소리는 정겨운 추억이다. ▼설을 제대로 쇠기까지는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1895년 고종 때 을미개혁으로 우리 역사상 처음 태양력 사용이 공식화된 게 단초다. 대한제국 시절과 일제강점기에 이어 광복 이후에도 양력 1월1일의 신정(新正)이 장려됐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대다수가 음력설인 구정(舊正)을 설날로 삼았다. 결국 1985년부터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의 하루 공휴일이 됐다가 1989년부터 음력설을 전후한 3일간이 공휴일로 지정됐다. 이번 설 연휴는 임시공휴일까지 6일이다. ▼주말인 25일부터 설 연휴가 시작된다. 귀성길 교통이 가장 혼잡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은 대이동이 시작되는 내일(24일) 오후로 나타난 만큼 안전에 유의하기 바란다. 귀향길 발걸음이 가볍지 않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옛날에는 설날을 해와 달과 별이 사계절을 처음 운행하는 때라고 여겼다. 봄이 시작되는 날이고 만물이 생장하는 시기라는 뜻이다. 설날에 새해 각오를 다졌던 이유다. 모두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이번 설이 되기를 기대한다. ▼설 연휴 때면 갈수록 아픈 곳 늘어나는 어른들을 보면 마음이 무겁지만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들이 세뱃돈 받아 들고 깔깔대는 모습은 더없이 보기 좋다. 불황에 선물 보따리 가벼워졌어도 가족 친지들이 모여 앉으면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웃음꽃이 피기 마련이다. 고단한 일상의 무게에 짓눌리다 살가운 가족의 정을 느끼는 것보다 푸근한 것이 있을까. 살아내기가 버거운 요즘 이보다 더한 격려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막히는 길을 마다하지 않고 고향을 찾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