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정연수의 ‘탄광촌 기행’]‘희망을 캐다’ 대한민국 일으켜 세운 산업전사들

(1)한국 산업화의 심장, 강원도 탄광촌

◇1970년대 장성광업소 광부들의 출근 풍경. 사진=대한석탄공사

한국의 산업화를 위해 가장 많은 에너지원을 제공한 도시가 강원도 탄광촌이다. 경북 문경, 충남 보령, 전남 화순 지역도 대표적 탄광촌이지만, 매장량이나 생산량으로 볼 때 강원도의 석탄이 전국의 70%를 차지했다. 삼척·태백·정선·영월로 대표되는 탄광촌은 산업화의 요람으로서, 국가 경제발전의 동력을 제공한 심장이었다. 강릉도 중요한 탄광촌 중 하나인데, 시민들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다. 일출 명소로 유명한 정동진을 비롯하여 옥계에 이르기까지 강릉에도 40여 개의 탄광이 있었다. 정동진역이 1년 넘게 폐쇄된 것은 석탄합리화로 인한 폐광 때문이고, 정동진이 관광명소로 변한 것은 드라마 모래시계와 밀레니엄 일출 덕분이다.

탄광촌은 농촌·어촌과 더불어 대표적인 산업공동체 촌락이기도 하다. 강원도 최초의 탄광촌은 영월군 북면 마차리이다. 1935년 영월광업소가 개발되면서 일본인, 중국인까지 모여들었다. 산둥성과 랴오닝성 푸순탄광 일대에서 온 중국인 광부만도 800명에 이르면서, 아편으로 인한 환각 상태의 중국인 범죄가 영월의 사회문제로 대두할 정도였다. 1960~1970년대 전성기에 영월군 인구 절반이 마차리 일대에 살았을 정도로 탄광촌 규모가 컸다. 영월군이 기념공간을 만들면서 지역명 대신에 ‘강원도 탄광문화촌’이란 명칭을 만든 것도 강원도 최초의 탄광촌이란 자부심 때문이다.

◇국내 마지막 남은 국영탄광 삼척 도계광업소.

한반도 최초의 탄광 개발은 1903년 대한제국 정부가 프랑스인과 합동으로 개발한 평양탄전이다. 해방 직후에는 미군정이 남한지역 탄광을 운영했다. 한국인-프랑스인-중국인-일본인-미국인 등 5개 국민이 한반도 탄광에 개입하는 현상은 세계적으로도 특이한 현상이다. 마차리를 국제탄광촌으로 불러도 좋은데, 일제강점기 한국인 40만 명이 일본 탄광으로 강제동원된 서러운 역사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해방 이후에는 외화를 벌기 위해 독일탄광으로 자발적으로 떠난 파독광부까지 있었으니, ‘탄광 디아스포라’는 한국 석탄산업의 독특한 양상이기도 하다.

파독광부는 도계와 태백지역에서 탄광 기초교육을 받고 떠났으니, 강원도야말로 파독광부의 고향이다. 하여, 태백시 철암에는 파독광부 기념관을 자그마하게 만들어두었는데 규모를 키울 필요가 있다. 연고도 없는 경남 남해군에 파독광부들의 집단 주거지인 독일마을이 번듯하게 들어선 것을 보면, 탄광문화콘텐츠에 소홀한 삼척과 태백을 부끄럽게 한다.

1936년 삼척탄광(장성광업소와 도계광업소)이 개발되면서 삼척지역은 남한지역 최대 탄광촌으로 부상한다. 삼척탄광은 험준한 산맥으로 둘러싸인 산악 지형이어서 개발과 수송이 불가능하다는 보고에도 불구하고, 태평양전쟁 자원확보를 위해 강행하여 개발되었다. 탄질이 좋은 무연탄인 데다, 일본과 수송 거리가 짧다는 장점이 있었다. 삼척탄광을 두고 당시 신문은 병참기지라고 제목을 뽑을 정도였으니, 장성광업소와 도계광업소는 제국주의의 석탄 수탈이라는 서러운 역사를 증명하는 곳이기도 하다.

◇도계읍내 전경.

석탄산업이 호황을 이루면서 탄광촌도 확대된다. 1980년 삼척군 북평읍과 명주군 묵호읍이 통합하여 동해시를 개청했으며, 1981년에는 삼척군 장성읍과 황지읍을 분리하여 태백시로 승격시켰다. 1986년에는 삼척시와 삼척군으로 각각 분리하면서 도계읍은 삼척군의 수도읍으로 성장한다. 삼척군이라는 하나의 도시에서 삼척시·삼척군·동해시·태백시 등 4개 시군 직제를 형성한 것이라든가, 석탄이라는 단일산업으로 시(市) 직제를 형성한 태백시의 탄생은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정부가 탄광촌을 탄광도시로 기획한 것은 석탄산업도시의 기능 활성화, 탄광촌 주민의 위상 제고를 통한 석탄증산 독려를 위한 것이었다. 태백시는 “맑고 밝은 광도(鑛都) 새태백 건설”이란 슬로건을 공식화할 정도로 탄광촌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정선군의 대표적 탄광촌인 사북읍과 고한읍은 1960년대 들어 본격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민영탄광의 메카로 성장했다. 민영탄광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사북광업소와 정암광업소는 폐광 이후에도 탄광문화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전국의 7개 폐광지역 주민의 생존대책을 위해 사북·고한 지역에다 세운 국내 유일의 내국인 출입 카지노 역시 석탄산업의 산물로 볼 수 있다.

강원도 탄광촌이 존재하였기에 오늘날의 선진 한국이 가능했다. 석탄합리화 정책 이후 쇠락의 길을 걷는다지만, 탄광촌이 빚은 문화는 여전히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로 남아있다. 탄광촌은 근대산업화가 빚은 새로운 사회 공동체 모델이란 점에서도 주목해야 할 장소이다. 석탄산업으로 승격된 태백시조차 마지막 광업소이던 장성광업소가 지난해 6월 폐광했다. 오는 6월이면 대한석탄공사의 마지막 광업소인 도계광업소마저 문을 닫을 것이다. 도계탄광촌은 마지막 남은 경동상덕광업소를 통해 여전히 우리나라 마지막 탄광촌의 상징성을 지켜나갈 것이다. 모든 탄광이 문을 닫더라도 탄광촌의 역사적 의의까지 사라지게 둬서는 안 될 것이다.

정연수

1991년 탄전문화연구소를 설립한 이래 탄광이 빚은 삶들을 문화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에 전념했다. 2020년부터는 석탄산업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활동과 석탄산업전사들을 예우하는 방안 모색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탄광시전집’, ‘여기가 막장이다’, ‘탄광촌 풍속 이야기’, ‘탄광촌 도계의 산업문화사’, ‘강원도 석탄산업유산 현황과 세계유산화 방안’, ‘노보리와 동발: 탄광민속문화 보고서’, ‘한국 탄광사: 광부의 절규’ 등이 있다.

글 싣는 순서

1. 한국 산업화의 심장, 강원도 탄광촌

2. 탄광촌의 별난 금기·금기어들

3. 유행어로 살펴보는 탄광촌의 속살

4. 광부가 산업전사의 칭호를 얻기까지

5. ‘막장’을 함부로 입에 올리다니!

6. 대를 잇는 광부, 광부가 꿈인 학생과 학교들

7. 광업소의 위계와 광부의 계급: 석탄공사, 탄좌, 탄광

8. 우물방송이 있던 탄광 사택 풍경

9. 탄광 모빌리티: 수갱, 사갱, 삭도, 선탄장

10. 강원도 석탄산업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피플&피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