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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토]대한민국 최대 석탄산업지역폐광 등 겪으며 ‘쇠락의 길’로기반시설 구축 경제회생 노력탄광 관련 축제·행사 등 다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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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의 추억 품고 문화를 캐는 장성

대한민국 최대 석탄산업지역
폐광 등 겪으며 ‘쇠락의 길’ 로
기반시설 구축 경제회생 노력
탄광 관련 축제·행사 등 다채

◇태백 백두대간
◇태백 장성동

#태백 장성동 톺아보기

장성동의 흥망성쇠는 석탄산업과 궤를 같이해 왔다. 1933년 삼척개발주식회사가 설립되고 후신인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가 연간 200만톤이 넘는 무연탄을 생산하며 최대 석탄산업을 이뤘지만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으로 인한 산업 쇠퇴와 올 6월 장성광업소 폐광을 겪으며 급격히 축소됐다.

1759년 29호 120명이던 인구는 1962년 3,812호 1만7,278명, 1980년 4,527호 2만2,883명으로 늘었고 시 승격 이후 1987년 5,183호 2만2,808명이 살았다. 현재는 1,173세대, 1,768명(주민등록인구통계 10월 기준)으로 급감한 상태다. 북쪽은 문곡동과 접해 있고 동쪽은 철암동, 남쪽은 동점동, 서쪽은 금천동과 맞닿았다. 북쪽에는 송내산(松內山), 동북쪽에 우금산(于今山), 남쪽에 박월산(朴月山)이 솟아 있고 마을 가운데에 사리미산(士?山·사름산)이 있다.

태백문화원에서 펴낸 ‘태백시지명지(김강산 著)’에 따르면 장성동은 지금의 황지지역인 장생(장성) 아래에 있어 옛날에는 하장생(하장성)이라고 했다. 장생(長生)과 장성(長省)은 장승을 의미한다. 옛 성역인 태백산을 알리는 장승을 산 아래 곳곳에 세웠기에 장생이라 했다고 한다.

500여년 전 삼척 김씨가 먼저 들어와 개척했고 400여년 전 안동 권씨, 300여년 전 연일 정씨가 이주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1940년 황지에 있던 상장면사무소를 하장성으로 옮겨온 후 상장면 소재지가 됐다. 1960년 삼척군 상장면이 장성읍으로 승격되며 장성읍 소재지가 됐다가 1981년 태백시가 출범하며 장성동, 화광동, 계산동으로 행정구역이 갈라졌다. 1997년 계산동과 화광동의 동명이 일제의 잔재라고 해 장성동은 장성1동, 화광동은 장성2동, 계산동은 장성3동으로 바뀌었다.

1998년 태백시의 16개 동이 8개 동으로 통폐합되며 장성1동은 구문소동에 통합되고 장성2·3동과 금천동 일원을 포함해 면적 11.84㎢인 현재의 장성동이 됐다. 이에 따라 행정동은 장성동이지만 법정동은 장성동이 아니거나 혹은 반대의 경우가 되는 지역이 생겼다. 여기에서는 넓은 범위에서 장성동 지역을 살펴본다.

1945년 삼척경찰서 장성지서로 발족했던 태백경찰서, 1987년 세워진 태백교육지원청, 1937년 세워진 장성우체국 등 관공서와 1948년 개교한 태백중, 1951년 설립된 태백기계공고(현 한국항공고) 등 학교, 한국안전체험관(365세이프타운) 등이 들어서 있다.

장성동은 광업소 폐광 이후 경제 회생을 위해 각종 기반시설 구축을 통한 문화 활성화에 집중하고 있다. 또 장성중앙시장 ‘탄◇빛 야시장’, 문화예술축제 광공제, 장성탄탄마을축제 등 각종 행사를 성황리에 개최하며 이목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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