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수막은 무언가를 알리거나 축하하고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손 쉽게 활용하는 수단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주요 길목에 게첩해 제각각의 문구와 색채, 크기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때로는 과도한 현수막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대부분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에 소식을 머릿속에 각인하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평소대로라면 고(故) 박수근 화가의 걸작들로 꾸민 건물 외벽과 담벼락이 양구를 오가는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했겠지만 어느샌가 골목 곳곳은 수많은 현수막들이 그 감성을 가리고 있다. 올 7월 환경부가 지역사회에 뜻밖의 소식을 일방적으로 내던진 순간부터다.
환경부는 불과 넉 달 전 양구 수입천을 ‘기후대응댐 후보지’ 14곳 중 한 곳으로 선정했다.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대표 관광지이자 정체성과 다를 바 없는 양구 '두타연'이 신규 댐 조성으로 수몰돼 사라질 수 있다는 공포감이 군민들을 덮쳤다. 두타연을 기반으로 한 관광 소비 효과도 머지않아 없어질 것이란 비보였다. 이에 '수입천 댐 건설 결사반대'로 똘똘 뭉친 지역 사회·단체들이 합심해 현수막을 내걸고 환경부에 곧장 맞서고 나섰다. 양구 초입인 죽리초교 앞 길목부터 군청 앞, 읍내와 거리가 어느정도 있는 해안면, 방산면까지도 수십, 수백장에 이르는 반대 현수막이 현재도 널려 있다.
환경부의 독단적인 결정은 매번 강원도를 옥죄어 왔다. 이를테면 양양군의 숙원사업이었던 오색케이블카 설치는 환경영향평가라는 높은 벽에 가로 막혀 1980년대 추진된 이후 40년가량 표류하기도 했다. 춘천~속초 동서고속철도 역시 전략환경영향평가 보완 요구로 2년이 넘도록 지연됐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벌어진 불가피한 현실이었다고 하더라도 군사, 환경 등 갖은 규제로 수십년의 피해를 감내해 온 지역민들의 무기력함을 취재할 때면 허탈함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양구 수입천 댐 개발도 반도체 산업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또다시 지역에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안심할 때가 아니다. 환경부가 지난달 양구를 비롯한 4개 지역을 신규 댐 후보지에서 제외했더라도, 여전히 임시 후보지격인 후보지(안)으로 남겨져 있다. 한숨 고르는 시기일 뿐 우려는 여전하다. 반대 여론이 크지만 일부 댐 설치를 찬성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현수막 문구가 둘로 갈라져 있는 이유다. 장마철 범람과 재산 피해 우려, 반도체 산업 발전을 앞세운 찬성 입장을 놓고 질타하거나 묵살할 수도 없다. 그들에게는 찬성이 곧 생존권일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찬반으로 나뉜 지역 정세를 다시 봉합하는 것이 지금의 양구군정이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가 아닐까.
다행인 점은 이미 양구는 성공 사례를 가졌다는 점이다. 2001년 국토교통부가 수입천 하류인 밤성골댐 건설을 추진했지만, 지금처럼 막강한 반대에 결론적으로 2007년 무산됐다. 주민 동의와 설득을 바탕으로 수입천 댐 사업을 이어나가겠다는 환경부 방침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 만큼, 주민들간의 내홍을 서둘러 잠재우고 가장 합리적인 묘수를 찾아내야 할 때다. 희생 없는 발전은 없다는 식의 정부 방침도 이제는 지역 정서에 맞는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 어지러운 길거리의 현수막도 언젠가 사라질 순간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