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1월7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이 수도권 광역 교통망 공약을 발표했다. 당시 발표에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B 노선을 기존의 경춘선을 활용해 춘천까지 연장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GTX-B 노선 춘천 연장은 이보다 2년 앞선 국회의원 총선에서 공약으로 등장해 지역의 기대가 이미 싹을 틔운 상태였다. 대선으로 옮겨 심어진 GTX의 존재감은 지역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같은 해 5월4일 당선인 신분으로 춘천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강원지역 대표 공약이었던 GTX-B 노선 연장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노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시간이 흘러 올해 1월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드디어 GTX-B 노선 춘천 연장을 공식화했다.
춘천시민들은 환호했다. GTX-B 연장이 경춘선 전철, 춘천~용산 ITX, 춘천~속초 고속철도에 이은 또 하나의 철도 혁명으로서 명실상부한 수도권 춘천 시대를 완성할 마침표가 될 것이라 자축했다. GTX-B 건설이 끝나면 춘천역에서 서울역까지 55분, 인천 송도까지 87분 만에 도착할 수 있다는 전망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운행 간격과 탑승 운임에 대한 궁금증은 연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4,200억원으로 추산되는 막대한 사업비의 압박, 국비 지원을 확정 짓기까지 넘어야 하는 수 많은 심사 난관들은 한낱 기우처럼 여겨졌다. 대통령의 약속이 주는 힘, 무게 덕분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의 약속이 해를 넘기기도 전에 나온 정부의 발표가 미묘하다.
정부는 16일 GTX-B 춘천·경기 가평 구간을 기존에 마석까지 계획된 본선과 동시에 2030년 개통하겠다고 밝혔다. 개통 시점이 안갯속에 빠져있던 상태에서 조기 개통을 못박은 정부의 시원한 결단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따져보니 건설 비용을 지자체가 내는 원인자부담 방식을 검토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지역사회는 물음표에 휩싸였다. 알려진 사업비 4,200억원은 지자체가 감당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이다.
춘천시는 지자체의 곳간 사정을 나타내는 지표인 재정 자립도가 올해 고작 18.9%에 그친다. 내년도 세입은 올해 대비 231억원이나 감소할 것으로 전망돼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전방위로 칼바람이 부는 상황이다.
지자체가 떠안을 수준으로 사업비를 대폭 절감할 묘수로 거론되는 것도 운행 횟수 조정, 정차역에 대한 재검토가 고작이다. 논란이 따라 붙을 만한 요소들이다. 이미 1시간 간격으로 춘천~용산 ITX 열차가 오가는 상태에서 운행이 쪼그라든 GTX가 마냥 곱게 보일리 없다.
국토부는 여론을 의식한 듯 춘천시와 가평군이 주민들의 교통 편의성 향상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원인자부담방식을 건의했음을 내세웠다.
하지만 뒷 맛이 개운치 않다. GTX-B 춘천 연장이 공식화 된 후부터 불과 수 개월 전까지 “정부 재정 지원이 우선”이라며 강수를 두던 지자체들이 짧은 시간 입장을 누그러뜨린 배경으로 국토부의 끈질긴 설득이 지목되기 때문이다. 정부의 승인을 기다리는 지역 SOC 현안들이 산적한 지자체가 언제까지 정부와 팽팽한 대립각을 세울 수 있었을까 싶다.
전국의 GTX 사업들이 정부와 지자체 간 예산 분담을 놓고 아웅다웅이다. 정부 생색내기에 지친 지역의 볼멘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