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월요칼럼]기울어진 운동장 ‘젠더 불평등’

정구연 강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얼마 전 모 정부 부처에서 국제회의를 개최한다며 홍보 포스터를 온라인 상에 게재한 이후, 국내외 관련 분야 전문가들은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소위 매널(manel), 즉 모든 토론자가 남성으로 구성된 국제회의였기 때문이다. 관련 분야에 여성 전문가가 없었다는 해당 부처의 변명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그 분야에는 너무나 많은 여성 전문가들이 이미 정부 각 부처에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향을 요 몇 년간 더욱 빈번하게 목격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필자의 착각이길 바란다. 세계적인 저널인 '네이쳐(Nature)'에서는 2019년 “과학 분야 회의에서 남성 중심의 회의를 어떻게 근절할 수 있을까? (How to banish manels and manferences from scientific meetings)”라는 글을 출판하기도 했는데, 한국은 이러한 문제의식조차 없는 상황이다. 아마도 국내 적지 않은 정부 및 공공기관의 조직구조에는 이러한 현상이 너무나 ‘자연스러울’ 것이며, 정부뿐만 아니라 학계도 마찬가지이다. 특정 분야는 보이지 않는 진입장벽조차 너무나 높다. 다양성이 담보되지 않은 조직은 건강하지 못하며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정책에 있어서의 쏠림 현상도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편향성의 부작용을 인지조차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무능하거나, 아니면 몰염치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가 단순히 토론회나 행사, 조직에서의 젠더 격차를 줄이라는 불만으로 읽힌다면, 이는 더욱 절망스러운 상황일 것이다. 토론회나 행사에서의 젠더 불평등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며, 체제 자체의 문제가 표출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특정 젠더가 좀 더 많이 포함되면 정치 발전이 더디게 진행되는가? 혹은 지식 창출 과정이 후퇴하는가? 2019년 미국정치학회(American Political Science Association)는 학회의 저명 학술지인 '미국정치학회보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의 편집인 12명을 모두 여성과 유색인종으로 구성하기도 했다. 남성·백인 학자들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현재의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경종을 울린 사건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대중의 일시적인 환심을 사기 위해 정치인들이 ‘글로벌 스탠다드,’ ‘격차 해소’를 외치지 않길 바란다. 생각보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영역과 집단 간의 격차가 존재한다. 젠더도 그중 하나이다. 사회의 지도층이 목소리를 내지 않는 이상 이러한 격차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제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편의라는 미명 하에 배제와 편향에 기반한 국정운영을 일삼는다면, 그 사회는 건강하게 유지될 수가 없다. 우리 사회에는 그 어떤 기준으로도 배제되거나 차별받는 집단이 있어서는 안된다. 모든 사회 구성원은 그 자체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고, 젠더 간의 평등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 혹은 어떤 조건 하에서만 지켜져야하는 가치가 아니다.

젠더 불평등은 그 자체가 독립변수로서 더욱 많은 문제로 이어진다. 이와 관련한 많은 연구가 존재하지만, 대개 그것은 ‘비주류’ 학문으로 치부되어오곤 했다. 여성 역량강화, 여성·평화·안보 등, 젠더 평등은 민주주의와 평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변수이기도 하다.

젠더 평등이 선거철에나 떠오르는 수단적 가치로 머무르지 않기를 기대한다. 또한 특정 분야는 특정 젠더가 이끌어야한다는 후진적 사고도 언젠간 없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이미 조성되어있다면, 이런 문제 제기조차 시대착오적인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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