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에 얼음주머니 얹고 에너지음료 짜 먹는 해맑은 모습으로, 보는 사람까지 행복하게 만들었던 한국 탁구의 희망 신유빈. 7월27일 파리올림픽 개막 첫날부터 단체전 동메달 결정전이 있던 지난 10일까지 15일간 혼합 복식부터 여자 단식, 단체전까지 14경기를 치렀다. 하루에 두 경기를 치른 날도 있었다. 어지간한 체력으로는 버티기 어려웠을 경기 일정을 다 마치고, 신유빈은 “이젠 잠 좀 자고... 나를 냅둬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여자 단식에 이어 여자 단체전 동메달을 딴 뒤였다. 예전 같으면 “성원해준 국민들께 (금메달을 못 따서)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을 장면에서 그는 달랐다. 누구보다 길고 또 치열한 올림픽 일정을 소화한 스무살 신유빈은 스스로를 긍정했고, 다음을 약속했다.
보름간 계속된 파리올림픽이 끝났다. 한국 선수단은 금메달 13개, 은메달 8개, 동메달 10개 등 총 31개의 메달을 따며 대한민국을 8위로 밀어 올렸다. (11일 오후 8시 기준) 출전 선수 144명으로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가장 작은 규모의 선수단이었지만, 성적은 당초 예상인 종합순위 18위를 훌쩍 뛰어넘어 8위에 진입했다.
폭염과 열대야 기록을 경신한 대한민국의 8월을 버티게 한 것은 7시간의 시차를 넘어 파리에서 들려오는 승전보였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선수들의 말, 말, 말이었다.
“어떻게 해요. 뽑혔는데.” 개막 이틀째인 7월28일 양궁 여자팀이 단체전 금메달을 따낸 뒤 전훈영 선수는 올림픽은 물론 국제대회 경험이 많지 않은 자신에 대한 우려를 잘 알고 있었다면서 “짧지 않은 선발전, 평가전을 다 제가 뚫고 들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자신감은 경기 결과로 확인되었다. 학연도, 지연도, 지명도도 다 물리치고 오직 실력을 기반으로 공정한 선수 선발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 선수의 그 짧은 한 마디가 다 설명했다.
10대, 20대 선수들의 어록은 수첩에 적어 뒀다 두고두고 나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현명함으로 가득하다. “괜찮아. 다 나보다 못 쏴”(사격 김예지), “나도 부족하지만 남도 별거 아냐”(사격 반효진), “내 갈 길은 내가 정한다”(사격 오예진),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사격 양지인),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진짜 잘하는 줄 알고 그렇게 잘할 수 있었던 것 같다”(펜싱 오상욱), “질 자신이 없었다.”(펜싱 도경동), “메달을 땄다고 해서 (그 기분에) 젖어 있지 말고. 해 뜨면 다시 마릅니다.”(양궁 김우진), “저물어가는 건 저물어가고, 이제(차세대가) 새롭게 떠야죠.”(양궁 이우석)
MZ세대를 철없고 자기중심적이라고 걱정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파리올림픽에 출전한 MZ세대 선수들은 자신의 약점을 부정하지 않고 장점을 과장하지 않는 성숙한 모습으로 귀한 어록들을 남겼다. “사지가 타들어 가는 것 같은”(수영 김우민) 극한까지 자신을 밀어붙이면서 남다른 결실을 일궈내는가 하면 “제 목소리를 높이고 싶었다. 제 꿈은 어떻게 보면 ‘목소리’였다”(배드민턴 안세영)고 기성세대와 기존 체제에 쓴소리를 던졌다. 자기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된 이들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견인해 나갈 에너지를 가득 담고 있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