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강원포럼]‘농지농용 원칙’ 도입의 필요성

최종수 강원자치도의원

대한민국의 농업과 농촌은 광복 이후 급속한 변화와 발전을 경험해 왔다. 특히 1948년 도입된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은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해, 당시 사회적 불평등의 상징이었던 대지주제를 해체하고 농지를 더 공정하게 분배하는 기초를 마련했다. 이 원칙은 한국 농업의 근간을 이루며, 1950년 농지개혁을 통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달성했다. 수많은 농민들이 자신의 토지에서 자유롭게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됐고, 이는 한국 농업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됐다. 그러나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며 대한민국의 산업 구조는 급격히 변화했다. 경제 성장의 주된 동력 중 하나가 바로 부동산, 특히 토지 거래였다. 그런데 농지의 경우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라 농민만이 거래할 수 있었기 때문에 농지 가격은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됐다. 이는 농가들을 경제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했다. 농업은 더욱 폐쇄적인 산업이 될 수밖에 없었으며 경자유전의 원칙은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1996년에 도입된 농지취득자격증명 제도는 농지 구입과 취득 절차를 다소 간소화했지만 여전히 많은 제약과 규제가 따랐다. 농지를 구입한 후 실제로 직접 경작하지 않는 경우, 농지를 매각할 때까지 공시지가의 25%에 해당하는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졌다. 이러한 규제는 농지 소유주들에게 많은 부담을 주었고, 농업 직불금을 실제 일부 경작 농민들이 받지 못하는 등의 문제도 발생했다. 농지 가격 역시 농민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평당 15만원에서 40만원 사이로 거래되는 농지는 기존 농민들은 물론, 새롭게 농업에 진입하려는 창업 농민들에게도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이는 농업 인구와 규모의 확대를 어렵게 하며, 반대로 이농을 고려하는 농민들에게는 너무 낮은 가격으로 인해 이농 결정을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은 농업의 개방성과 유연성을 저해하며 농촌 경제의 활성화에도 큰 장애가 된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농지제도의 혁신이 필요하다. ‘농지 소유권과 농지 경작권의 분리’는 이를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농지 소유권을 누구나 취득할 수 있도록 하되, 직접 경작이 어려운 경우에는 경작권을 국가에 위탁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국가는 위탁받은 농지를 경작을 희망하는 농민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임대하고 이를 통해 농업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농지 임대 시스템의 도입은 농가의 부담을 줄이고, 새로운 농민의 진입 장벽을 낮추며, 농업 직불금의 투명한 지급 및 농지 거래의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의 도입은 농지 투기나 대지주의 재등장과 같은 부정적인 요소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토지거래 허가제의 적용, 농지 구입 상한선 설정 등의 규제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농지 거래 현황의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투기 조짐을 사전에 파악하고 대응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헌법 제121조 제1항 ‘경자유전의 원칙’을 현대 사회의 요구에 맞게 ‘농지농용(農地農用)의 원칙’으로 개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농업 정책의 변화를 넘어서 농촌 사회와 국가 경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직면한 농촌 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농업과 농촌의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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