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어머니는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여 남원과 서울 소재 산부인과를 8시간씩 왕복하면서 2003년 1월 어렵게 소중한 아들을 얻게 되었다. 어렵게 얻은 아이인 만큼 큰 기쁨이었을 것이다. 그 아이는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2023년 3월 27일 해병대 자원입대를 하였다. 7주간의 기본 군사훈련을 받았고 해병대 제1사단에 배치가 되었다. 하지만 자대 배치된지 얼마 후 수해 지역 인근 강물 속으로 실종자 수색을 위한 작전에 투입이 되었고 급류 속에 맨몸으로 수색작업을 하던 중 사망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5월 11일 수료식 때 부대 근처 펜션에서 점심식사 했던 것이 아들의 마지막시간이었다고 한다. 채수근 상병의 순직사건이다.
처음에 이 사건의 본질은 업무상과치사 혐의 내용이었다. 안전상의 위험이 있는 작전이었음에도 관련 규정 등의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작업을 지시하거나 그와 같은 안전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작전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방치하였는가 여부에 대한 것이었다. 수사기관이 관련자들을 소환하여 관련 사항 조사를 진행하여 의법조치하고, 정부는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세우면 될 일이었다.
해병대 수사단장은 조사결과를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하여 결재를 받은 후 경상북도 경찰청으로 사건을 이첩하였다. 거기까지는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후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대통령실 인사, 국방부 인사, 해병대 사령관 등이 이 사건과 관련해 의견을 나눴던 것으로 의심이 들고, 관련자들의 다수의 통화기록과 문자내역이 있다. 그 와중에 수사단장은 수사외압의혹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였다. 그런데 뜬금없이 수사단장에 대하여 구속영장이 청구되었고 군사법원은 영장청구를 기각하였다. 사건의 본질이 수사외압 논란으로, 특검법 도입 논란으로 번지게 된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지난 21일 국회법제사법위원회에서 ‘채상병 특검법’ 입법 청문회가 열렸다.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임성근 해병대 제1사단장 등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실체와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그들의 증언 내용이 중요하였기 때문에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기대도 컸다.
하지만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제3조는 ‘누구든지 자기가 형사소추 또는 공소제기를 당하거나 유죄판결을 받을 사실이 드러날 염려가 있는 선서·증언 또는 서류등의 제출을 거부할 수 있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종섭 전 장관 등이 선택적으로 질문의 일부에 대한 증언을 거부한 것도 아니라 해당조항을 근거로 아예 선서거부를 해 버린 것이다. 수많은 국민들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선서거부라니! 선서거부 하는 사람들의 말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다는 말인가. 더욱이 젊은 해병이 억울하게 죽음에 이른 안타까운 사건과 관련된 것 아닌가.
필자도 사건을 수행하는 과정속에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증언하는 수많은 증인을 보아 왔다. 하지만 증인 선서 자체를 거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거니와 신문사항에 대하여 선택적으로 증언을 거부하는 일도 사실상 없다. 이는 실체진실을 밝히는 것이 인간의 양심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들은 증인석에 서서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본 대로, 들은 대로 성실히 증언한다.
젊은 나이에 억울하게 순직한 부하 해병대원에 대하여, 평생을 가슴속에 자식을 담고 사실 해병대원의 부모님에 대하여 일말의 책임감은 물론 인간의 양심조차 있는지 강한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정치권이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양심에 따라 살펴주기를 바란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와 별개로 관련자들이 수사외압 논란에 대하여도 억울하다고 여긴다면 오히려 숨김없이 모든 과정을 밝히는 편이 나을 것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경험해 보았다. 모두 솔직하지 못할 때 벌어진 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