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철학자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헤겔이 1821년 쓴 저서 ‘대논리학’에는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나 “형식 없는 내용은 맹목이고, 내용 없는 형식은 공허하다”라고 한 철학자 칸트의 외침을 생각해보면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은 진리가 아니며 때에 따라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그 이유는 내용이 형식을 만들기도 하고 형식이 내용을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은 강원특별자치도 특별법의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있는 현시점에서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강원특별자치도 본격 출범에 맞춰 앞으로 이를 이끌어 나아가야 할 조직의 미래와 역할이라는 상황 측면에서 그러하다. ‘강원특별자치도의 미래를 담당할 조직의 구성, 업무의 분장 등이 성공적인가’라는 평가보다 그 조직이 실천력과 지속 가능성을 가지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성공한 조직이라는 형식의 평가는 자칫 일종의 경로의존성에 의해 다시 과거의 관료화된 조직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분석이 많다. 이것은 비단 도의회뿐 아니라 도청과 산하 모든 조직에 적용된다고 할 것이다. 비록 우리 도민들이 원했던 특례안 137개 가운데 84개만 반영된 채 강원특별자치도가 본격 출발하지만 이는 628년의 강원도 역사 속에서 도민들이 만들어 낸 대단한 성과이자 지방자치의 원형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특별법 시행령에는 산림을 비롯해 농지, 군용지에 대한 활용계획 허가 등 다수 허가권한이 중앙부처에서 도로 이양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산림이용진흥지구’, ‘농촌활력촉진지구’의 지정은 지역별 특성과 환경에 맞춰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이 마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제도적 장치는 발전을 위한 형식일 뿐 발전을 위한 원동력은 무엇보다 실천이 최우선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11대 우리 도의회와 민선 8기 집행부 모두 후반기 조직 구성은 형식을 배제하는 리더십을 근간으로 조직과 도민이 한 방향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미래지향적이며 지역 활성화에 대한 실천력이 담보된 것이어야 한다는 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 말은 조직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도민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도민을 위한 특별한 정책과 실천이 최우선되는 조직이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특별자치도가 남발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 도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함에 모든 정책의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형식이 ‘어떻게’라는 일종의 예의에 관한 것이라면 내용은 ‘무엇’에 대한 근본적 사항을 담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런 식이면 안 된다”라든지 “이것은 관행에 어긋나는 것이야”라는 말은 행위의 방법도 있지만 형식이라는 틀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소리다. 특히 관료사회가 심하다. 관료사회는 거의 모든 행위가 형식에 맞춰야 되는 사회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데도 알 만한 사람들이 본질을 외면하고 억지를 쓰는 것은 강원특별자치도 본격 출범을 바라보는 희망의 시각이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 강원특별자치도의 당면한 문제를 생각할 때 격과 명분을 앞세우는 한가한 시간을 보낼 때가 아님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논어’ 옹야편에 “문(형식)보다 질(내용)이 나으면 촌스럽고, 문이 질보다 나으면 사치스럽다. 문과 질이 잘 조화돼야만 군자라 할 만하다”는 말이 생각나는 오늘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