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차인 A씨는 한파가 심하던 지난해 12월말께 외출했다가 다음 날 밤에 귀가했다. 보일러실에 물이 가득찬 것을 발견해 살펴보니 보일러가 동파돼 누수가 일어난 것이었다. 물이 주택의 실내까지 흘러넘쳐 밤새 양동이로 퍼 나르느라 고생했는데 임대인 B씨는 임차인의 관리 소홀로 인해 보일러가 동파된 것이므로 A씨에게 책임이 있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아래층에도 보일러 누수로 인한 천장 누수가 발생했는데, B씨는 아래층 수리비용까지 A씨가 부담하라고 했다. A씨는 억울한 마음이 들어 분쟁조정신청을 했다.
위 사안은 크게 보일러 교체 비용과 아래층 수리비용 부담의 문제로 나눠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보일러 교체비용에 대해 판단해 보자. 임대차계약에 있어서 임대인은 목적물을 계약 존속 중 그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므로(민법 제623조), 목적물에 파손 또는 장해가 생긴 경우 수선하지 않으면 임차인이 계약 목적대로 사용·수익할 수 없는 상태로 될 정도의 것이라면 임대인은 그 수선의무를 부담한다. 이러한 임대인의 수선의무는 특약으로 면제하거나 임차인의 부담으로 돌릴 수 있으나, 이러한 경우는 통상 생길 수 있는 소규모의 수선에 한하고, 대파손의 수리, 건물의 주요 구성부분에 대한 대수선, 기본적 설비부분의 교체 등과 같은 대규모의 수선은 여전히 임대인이 그 수선의무를 부담한다(대법원 1994. 12. 9. 선고 94다34692, 94다34708 판결 참조).
보일러는 주택의 기본적 설비부분이라 볼 수 있으므로 위 판결의 취지를 감안할 때 보일러 고장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부담한다. 다만 임차인의 관리소홀 등 책임있는 사유로 보일러가 동파됐다면 임차인에게도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는데, 보일러 동파사고에 대한 서울시의 분쟁조정 기준안(2011. 1. 19.)에 따르면 서울시는 보일러의 사용가능 기간을 7년으로 정했으며, 이 기간 이내에는 임차인이 일정 비율을 부담하고 7년이 지나게 되면 임차인은 책임이 없고 임대인이 비용을 부담하는 것으로 하고 있다. 이 사건 주택의 보일러는 2015년에 설치돼 7년 이상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므로 서울시의 분쟁조정 기준안 등을 감안해 보일러 교체비용은 임대인이 부담하는 것으로 조정됐다.
이제 아래층 수리비용 부담의 문제가 남았다.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의 하자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공작물 점유자가 1차적으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민법 제758조 제1항). 보일러의 동파를 방지할 의무는 이를 점유·사용하고 있는 임차인에게 있고, 겨울철 한파가 예상될 경우 동파방지를 취하는 것이 통상적인데, A씨는 아무런 동파방지를 하지 않았다. 또한 한파가 몰아친 이틀간 보일러를 작동시키지 않고 외출해 손해방지에 필요한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따라서 A씨에게 아래층 누수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됐다. 다만 보일러의 노후화, 보일러실 환기창의 틈새가 벌어진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보일러 및 보일러실의 하자가 사고 발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여 아래층 수리비용에 대해서는 A씨와 B씨가 나눠 부담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