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시내로부터 버스로 40분을 달리면 부창, 거기서 나룻배를 타고 약 10분 소양강을 건너, 다시 30분 정도 아랫품실‧윗품실‧쇠메기를 지나가면 보인다. 내 고향 품안리”
최용순(69)씨가 회상하는 고향 춘천시 동면 품안리다. 1967년 중학교 1학년이던 최씨는 품안리에는 중학교가 없어 춘천시내와 품안리 본가를 오가며 댐 준공 과정을 지켜봤다.
“토요일 오후면 버스를 타고 댐공사 현장을 지나 집에 갔다. 나중엔 도로가 잠기며 가마골 산을 넘어 본가에 갔는데, 마지막으로 산 위에서 바라보았던 마을 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살던 집, 논과 개울이 눈에 선명하다”
대대손손 품안리에서 살아온 최씨의 가족들에게 고향을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을에 물이 차고 빠지기를 반복하던 1971년, 최씨의 가족은 춘천시 효자동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고향을 두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던 부모님은 거의 마지막으로 품안리를 떠났다.
소양강댐 건설 50년이 지난 2023년. 여전히 고향집 아궁이에서 밥을 짓던 어머니의 모습이 생생하지만, 이제는 품안리를 기억하는 사람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에 최씨는 수몰지역 실향민들의 희노애락을 글로 남기고 있다. 지난 2020년 ‘내고향 품안리’라는 수필집을 발간한 데 이어 올해는 그동안 품안리 일대 이웃들을 찾아 이야기를 나눈 내용을 엮은 인터뷰집도 발행했다.
“옥수수, 감자, 도토리밥을 먹으며 산기슭과 골짜기를 벗 삼아 살아온 품안리를 기억하는 사람이 이제는 많이 남지 않았다.나와 이웃들의 기억을 더듬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척박한 밭을 일구며 살던 사람들에게 뜻밖의 이주와 도시 생활은 더 척박했을지도 모른다. 최씨는 나라의 발전을 위해 희생을 감내해야 했던 실향민들의 애환을 기억해주길 당부했다.
“우리의 희생으로 나라가 이만큼 발전했다는 데에 자부심을 느낀다. 다시는 볼 수 없는 고향일지라도 말로, 글로 남아 사람들의 기억속에 오래 기억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