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월요칼럼]쓰지 못한 몸이 쓰지 못한 몸에게

김미월 소설가

며칠 전 생각지도 못했던 분의 연락을 받았다. 시인 선배님의 전화였다. 시인으로서도 인생 선배로서도 좋아하고 존경해온 분이지만 사실 직접 뵌 적은 몇 번 없고 그마저도 마지막 기억이 십 년 이상 되었을 만큼 오래 격조했던 터라, 나로서는 반가운 한편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선배님은 뒤늦게 나의 결혼 소식과 아이 소식을 들었다며 대견하다고 운을 떼신 후 그간 당신은 어떻게 지내셨는지 오히려 긴 세월이라 더 간략하게 압축할 수 있는 안부를 들려주셨다. 그러더니 대뜸 만나자고 하셨다. 나는 더더욱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일까. 갑자기 내게 무슨 볼일이 있으신 걸까. 그냥 특별한 이유 없이도 편하게 만날 수 있을 만큼 막역한 사이도 아니고. 대체 왜?

그러나 주변머리가 없어 차마 대놓고 이유를 묻지는 못하고 우물쭈물하는데, 선배님이 한술 더 떠 만나는 자리에 아이도 데려오라고 하셨다. 나는 아이가 산만하고 시끄러워 대화에 방해되니 아이 없이 뵙는 게 좋겠다고 말씀 드렸지만 선배님은 아이가 보고 싶으니 꼭 아이를 데려오라고 재차 당부하셨다. 결국 나는 그렇게 했다.

선배님이 사주시는 따뜻한 밥을 얻어먹은 다음이었다. 근처에 차 마시며 이야기 나누기 편한 곳이 있다고 하셔서 따라갔더니 뜻밖에도 선배님 작업실이었다. 조그만 방 하나와 거실로 이루어진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는 감탄사를 내질렀다. 살림살이 하나 없이 사방이 온통 책으로 둘러싸인 그런 집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녀석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제목도 이해 못할 책들을 두리번거리며 탐색을 즐기는 동안 나는 선배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어쩐지 머릿속의 물음표가 점점 더 또렷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대체 왜 만나자고 하셨을까.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마침내 탐색을 끝낸 아이가 심심하다며 내게 다가왔을 때였다. 선배님은 내게 당신이 아이와 놀 테니 방에 들어가서 좀 자라고 하셨다. 네? 아니에요. 안 피곤해요. 괜찮아. 편하게 생각해도 돼. 내가 아이 잘 볼 테니 한두 시간만이라도 좀 자. 그러면서 선배님은 덧붙이셨다. 캄캄한 방에서 푹 자고 싶다며. 내가 그 책 읽었거든. 제목부터 얼마나 가슴 미어지던지.

순간 모든 것이 요연해졌다. 선배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는 제목의 책이었다. 시인이면서 엄마인 작가들과 소설가이면서 엄마인 작가들이 각자 아이를 키우면서 글을 (못) 쓰는 상황에 대해 토로한 글을 모아놓은 앤솔러지였다. 그 책에 나는 ‘두꺼운 이불을 덮고 컴컴한 방에서 죽은 듯이 자고 싶다’고 썼다. 그만큼 늘 잠이 부족하고 힘들다는 하소연이었는데, 그 책을 선배님이 읽으셨다니. 엄마이면서 시인인 선배님은 말 안 해도 다 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알지. 나도 그랬으니까. 정말 너무 힘들었지. 어휴, 말해 뭐해. 이런 말 할 시간에 얼른 들어가서 자. 내가 그거 읽고 계속 생각했어. 정말 두 시간만이라도 푹 자게 해주고 싶다고. 내가 아이랑 잘 놀 테니 걱정 말고, 응? 선배님이 닫혀 있던 방문을 열었다. 암막 커튼이 쳐진 컴컴한 방에 키 낮은 매트리스와 폭신해 보이는 이불, 따뜻한 색감의 스탠드 불빛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정말이지 자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금세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을 것 같은 눈물겹게 아늑하고 다정한 방이었다. 비록 잘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고맙습니다,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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