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입원하는 강원특별자치도민 10명 중 3명(27.2%)은 강원자치도 이외의 지역으로 이동해 입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지원센터가 운영하는 '헬스맵'이 2021년도 기준으로 도내 의료이용 현황을 분석한 결과다. 강원자치도와 자매도시인 일본 돗토리현에 거주하는 환자 가운데 타 지역 의료기관에 입원하는 것으로 추계된 비율(1.6%)과 비교하면 무려 17배 차이다. 일본은 어떻게 발병 전 예방부터 진료와 수술 등 최종 치료까지 지역 안에서 해결하는 ‘지역완결형 의료체계’를 구성했을까? 그 밑바탕에는 한국의 시·군·구에 해당하는 시정촌(市町村)설립 지역 공공의료기관과 지역 의료체계의 중심 역할을 하는 현립의료원이 있다.
■지역사회 '선순환 구조'가 만드는 차이
지방의료원에 해당하는 돗토리현립중앙병원의 입원실은 518개. 진료기능만 해도 내과, 소아청소년과는 물론 정신건강의학과, 신생아집중치료실, 호스피스 센터까지 갖추고 있다. 한국에서 518병상 규모를 넘어서는 의료원은 2022년 12월 기준 655병상 규모의 서울의료원, 597병상을 갖춘 청주의료원, 543병상 규모의 부산의료원이 전부다. 강원자치도에서는 가장 큰 원주의료원이 243병상, 가장 규모가 작은 삼척의료원이 148병상인 점을 고려할 때 대략 2배에서 3.5배 가량 큰 규모인 셈이다.

일본의 경우 민간의료기관이 들어오기 어려울 정도로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도 공공병원은 독자적인 재정 운영이 가능하다. 의료의 질을 높여 주민들이 병원을 찾게 만들고, 주민들은 병원을 이용해야 할 때 부러 공공병원을 찾아 진료수익을 보태는 선순환 구조 덕분이다.
이는 공공의료기관이 자생적으로 경영을 유지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한국의 현실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돗토리현립중앙병원의 경우 2022년 기준 1년간 병원에서 발생하는 진료수익이 165억엔(약 1,524억원)으로, 전체 경영수익 203억엔의 약 81%를 차지했다.

■힘 보태는 지역사회의 저력
한국에서는 주민들이 병원을 갈 때 사용하는 건강보험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일괄적으로 관리하지만, 일본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한다는 점도 차이를 만드는 요소다. 지역 주민들이 마치 세금과 같은 형태로 지자체에 보험료를 납입,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과 책임감을 높이는 행정적 구조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지역 공공의료기관이 자생적인 구조를 유지하게끔 하는 시스템,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후쿠이 히사시 돗토리현 의료정책과장은 "기본적으로 현내의 의료원은 자생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고, 지역은 주민들이 의료 이용이 필요한 때 병원이나 의사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시스템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고 말했다.


“이 정도 규모의 대형 병원이면, 인력을 고용하는 일에는 문제가 없겠네요." 취재팀의 말에 히로오카 야스아키 돗토리현립중앙병원장은 손을 내저었다. 여전히 의사 인력 문제는 어렵고 신경 쓰이는 일이라는 의미로 들렸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과는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응급의료기관에 도착하지 못한 채 지역을 도는 일은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합니다" 지방의료원의 책임감을 또다시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히로오카 원장이 2020년 부임 이후 가장 신경써서 구축했던 시스템도 응급과 필수의료였다. 24시간 응급대응, 특히 뇌·신장·심장질환에 차질 없이 대응하는 의료를 제공하는 일, 신생아·소아의료와 출산 관련 대응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돗토리현 의료 사정상, 현의 동쪽 지역에서 3차 응급 치료를 할 수 있는 기관은 우리 병원이 유일합니다. 뇌졸중 환자가 쓰러졌을 때, 심장 카테터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발생했을 때, 대응이 가능한 기관은 이곳 뿐입니다" 지방의료원이 앞장서 중증 응급질환의 최종 치료를 제공하고, 차질 없는 필수의료체계가 돌아가도록 애쓰는 이유였다. 히로오카 원장은 "대학병원과 달리 의료원은 진료 제일주의"라며 "그만큼 또 중요한 것이 지역사회공헌"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우리 병원은 환자들에게 친절하고, 직원들이 일하고 싶어하고, 지역에 없어서는 안 되는 병원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강원도형 지역완결"시스템을 위해
132명. 강원자치도 내에 서울과 같은 수준의 의료 인프라가 없어 매년 숨지는 사람의 수다. 임준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가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복지포럼' 에 실린 연구를 통해 밝힌 결과다.
보건복지부는 2018년 전국 어디서도 진단부터 치료까지 마칠 수 있는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를 만들겠다는 방침을 발표했으나 지역간 불평등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각 지역 현장에서 지역의 보건의료 문제를 고민해온 전문가들은 이제 중앙정부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지방정부와 주민들이 책임과 권한을 가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강원도형 지역완결’ 의료 시스템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김동현(한림대 의대 사회의학교실 교수) 강원도통합건강증진사업지원단장은 "지역간 사망률 격차는 지역 완결적으로 의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여전히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부실한 지방자치의 결과이기도 하다"고 지적하고, "더 이상 주민의 건강 문제를 중앙정부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지방정부와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기본적인 사회적 조건 성찰해야
각 지방의료원 내부의 인력 부족 문제, 의사 부족을 야기하는 사회적 조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이어지고 있다. 현실적인 차원에서 의료원을 비롯한 공공의료기관이 튼튼한 구조를 갖추고 지역의료의 중심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사회적 제반을 정비해야 한다는 요지다. 권태형 원주의료원장은 “의료원의 기능 강화는 하루 아침에 되지 않고 지속적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지만 현재 원활히 이뤄지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하며 꾸준한 정치적, 정책적 지원을 촉구했다.
경기도 코로나19 긴급대응단장을 역임한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은 "병원은 그 특성상 전문인력 배치가 아주 중요한데, 아무리 정책이 옳고 바르더라도 현재의 인력구조로는 목적을 달성하기가 어렵다" 고 지적하고, "한국은 이미 지난 10여년간 사회구조가 매우 빠르게 변했고, 주거와 교육 문제 등 의사 수급을 위한 기본적인 사회적 조건이 이전같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책임의료기관의 사업이 부실해지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가장 현실적으로는 각 지방의료원에서 의사 공급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고 강조하고, "충분한 의사 수가 공급되기 전까지 단기적인 생존 전략을 짜야 하는 상황에서 지자체장은 주민의 건강과 생명 문제를 책임감있게 받아들이고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을 통해 지역간 건강 격차를 해소하겠다고 한지 6년째다. 성과와 한계를 어떻게 보나="지역 공공의료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인력을 채용할 수 있도록 예산을 매칭해서 사업비를 정한 것. 현재의 성과는 딱 그 정도다. 사업은 공공보건 협력체계 구축 사업으로 축소됐고, 그것조차도 잘 되고 있지 않다. 당초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 에서 발표한 계획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것 없다."
■정책 현장을 오래 경험한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계획이 이뤄지기 어렵겠다는 생각은 이전부터 하셨을 것 같다="계획이 발표되면 바로 예산이 투입되고 변화가 이어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현재 진행중인 사업을 위해 그나마 인력이라도 좀 확충할 수 있으면 좋은데 채용된 인력들의 상당 부분은 비정규직이다. 사업의 축적이 이뤄질수가 없는 구조다."
■지역 중심적인 정책이라는 관점에서도 아쉬운 점이 많다="대표적으로 2018년 대책에서는 시도에 공공보건의료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실제 지역 현장에서 운영이 잘 안 된다. 예산권은 없이 논의만 하는 구조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논의의 결과가 성과로 나타날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사람들은 패배감에 젖고 만다. 지역 재정분권, 특히 보건의료 재정분권이 전혀 없다. 위원회가 유명무실해지면 병원에 있는 전문가들이 정책을 모두 결정하게 된다는 점에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개별 병원이 제출한 복지부에 제출한 계획서대로만 사업이 진행되는 식이 된다."
■왜 이렇게 됐다고 보나="정치적 의지가 없었다. 정치적 의지란 예산 반영으로 나타나는데 전혀 예산 반영이 안 됐다. 예를 들어 대전, 진주, 서부산 공공병원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는 2021년 말이나 돼서야 진행됐다. 그 전까지는 협력체계 사업 구축 예산 만들어서 나눠주는 것 이상의 진척이 없었다. 지역간 필수의료 격차를 완화한다면서 구체적인 노력은 전혀 없었다."
■정책의 관점과 틀 자체도 반성의 여지가 있지 않나="공공의료를 보는 관점의 차이일 수 있는데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은 기본적으로 하향식 접근이었다. 조직도 전문가 조직이었다. 우선은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지역에서 이렇게 하는 거는 약간 나중 문제로 생각이 됐던 면이 없지 않다. 사실 같이 갔어야 하는 부분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나="현재 지역의료 정책은 공공의료를 축소시키면서 필수의료를 부각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특히 수가 등으로 필수의료를 장려하겠다고 하면 필연적으로 그 돈들은 민간으로 들어가게 돼 있다. 우선은 공공보건의료 협력체제 구축 사업이라도 잘 될 수 있도록 신경을 쓰는 동시에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이대로 의료 시장이 커지면 지역 의료를 아무리 양성해도 인력들은 다 수도권을 간다. 이미 지역 대학병원에는 수도권 병원으로부터 영입 제안 전화를 받지 않은 의사가 없다. 의료시장은 애초에 믿을 수 없고 정부의 의지도 그대로 믿을 것이 아니라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의료의 공공성에 힘을 보태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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