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법정칼럼]‘변론 전체의 취지’가 소중한 때

오지영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판사

판사들은 한 달에 수십 건의 판결문을 쓴다. 필자 역시 그렇다. 매달 필자가 쓰는 수십 건의 판결문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문구가 있는데, 그건 바로 ‘변론 전체의 취지’이다. 사실 거의 모든 민사 판결문에는 ‘변론 전체의 취지’가 쓰인다. 예컨대 ‘갑 제1, 2, 5호증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피고가 원고로부터 1억원을 빌린 사실이 인정된다’는 식이다.

‘변론 전체의 취지’란 무엇일까? 공식적인 답은 민사소송법에서 찾을 수 있다. 민사소송법 제202조에서는 자유심증주의라는 조항 아래 이런 규정을 두고 있다. ‘법원은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의 결과를 참작하여 자유로운 심증으로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라 사실주장이 진실한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흔히 증거로 떠올리는 계약서나 사진, 증인의 증언과는 별개로 ‘변론 전체의 취지’란 판사가 법정에서 직접 경험한 당사자의 주장 내용과 태도, 그로부터 받은 인상 등을 모두 포괄하는 일체의 사항을 의미한다. 앞서 본 민사소송법 조항에서 알 수 있듯이 변론 전체의 취지는 증거와 함께 판사의 심증을 형성한다. ‘변론 전체의 취지’가 언제나 꽉 찬 의미를 갖고 판결문에 담기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판결문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기재하는 대략 90%의 경우는 의례적이고 습관적인 것이다.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한다’는 문구를 쓰지 않고선 왠지 판결문이 완성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칼럼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나머지 10%의 경우에 관한 것이다.

아무리 기록을 읽고 또 읽어도 누가 진실을 말하는 것인지 도무지 헷갈리는 사건들이 있다. 원고와 피고가 준비서면에서 정반대의 사실을 각자 혼신의 힘을 다해 주장하지만, 모든 과정이 말로만 이뤄져 계약서 한 장 남아 있지 않은, 심증 형성을 위해 의지할 마땅한 증거가 없는 그런 사건 말이다. 이런 사건의 변론기일을 진행하는 날엔 이 사건을 도대체 어떻게 해결하나 하는 심란한 마음으로 법정에 들어간다. 진행 순서가 되면 사건 번호를 부르고 당사자 이름을 호명하는데, (소송대리인만 온 것이 아니라) 당사자 본인들이 출석해 원고석, 피고석에 앉으면 걱정이 가득하던 마음속에서 작은 희망이 생겨난다. 법정에 직접 출석한 당사자들은 다소 장황하게 자신의 입장을 호소하기도 하고, 열정적으로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하며, 때로는 감정이 격앙돼 상대방과 싸우기도 한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필자는 그런 변론 과정 속에서 가공되지 않은 진실의 실마리를 발견한다. 바로 ‘변론 전체의 취지’가 소중해지는 순간이다.

이런 사건들의 판결문을 쓸 때는 ‘변론 전체의 취지’란 문구에 꽤나 많은 의미가 녹아든다. 변론 당시 주장을 하는 원고의 말투와 표정이 정말 억울해 보였다거나, 피고의 반박에 원고가 당황하며 우물쭈물하고 목소리가 작아졌다거나, 지어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자세하게 당시의 상황을 술술 설명했다거나 하는 그런 변론기일에서의 인상과 기억들이 ‘변론 전체의 취지’라는 7글자가 돼 판결문에 담긴다.

이제 법정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얼굴을 가리던 마스크가 사라졌으니 ‘변론 전체의 취지’가 소중한 때가 좀 더 자주 찾아와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사무실 기온과 함께 높아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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