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년 전 6·25전쟁은 유례가 드문 사상자를 냈다. 그리고 아직도 ‘휴전’ 상태다. 휴전선 남북으로는 엄청난 규모의 병력이 실전(實戰) 대치하고 있다. 그들 뒤에 미국과 중국, 러시아라는 세계 최강국이 도사리고 있는 지역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는 현충일인 지난 6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에 무단 진입했다. 여기에 북핵의 위협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는 무핵(無核)의 한국, 선군(先軍) 정치로 무장한 세습 독재국가가 수시로 국지도발(천안함·연평도)을 일삼는 지역, 그리고 이런 상황에도 남쪽에 친북(親北) 또는 종북(從北)의 논란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수백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6.25 전쟁은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이 발효되면서 휴전상태가 이어지고 있지만 6.25 전쟁의 영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자신과 뜻이 다르거나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종북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이분법적 이념관, 상명하복식 군대 문화에 따른 조직의 경직성,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남을 배려하지 않는 태도 등은 6.25 전쟁이 남긴 어두운 그림자다.
안보 방치 땐 나라 강탈당해
우리는 안보를 방치하다 나라를 강탈당하는 치욕을 겪었다. 백년이 지나도록 나라를 빼앗은 일본만 증오하고 나라를 못 지킨 우리의 반성은 없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조선의 패망 소식을 듣고 이렇게 탄식했다.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이 일본도 아니고, 이완용도 아니며, 그것은 나 자신이다. 내가 왜 이완용으로 하여금 조국을 팔기를 허용하였나” 로마의 전략가 베게티우스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는 명언을 남겼다. 지금 대한민국의 안보는 튼튼한가. 상황은 위태롭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철저하게 대비해야만 자유와 평화를 지킬 수 있다. 그래야 할 대한민국에서 안보를 위한 훈련은 어디쯤 가고 있나. 지난 5월 31일 새벽 6시 40분쯤 서울 일대에는 사이렌 소리가 요란했다. 북한이 우주발사체라 주장하는 발사체를 쏘겠다고 예고했지만 그동안 한 번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 때문에 서울 지역에 경계경보가 발령된 적이 없어 국민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경계경보가 발령됐고, 실제 상황이며 구체적 장소 없이 대피할 준비를 하라는 방송까지 나왔다. 그러나 잠시 후 경계경보 ‘오발령’과 경보 해제 문자가 발송됐다. 이런 해프닝으로 안보는 담보될 수 없다.
정치인의 말 품격을 갖춰야
정말 유사시가 걱정스럽다. 여기에다 정치권의 막말은 국민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다. 말의 품격은 웬만한 시정잡배보다도 못하다. 제1야당의 수석 대변인은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을 두고 “부하들을 다 죽이고 무슨 낯짝으로”라며 막말을 퍼 부었다. 얼굴이 아니라 낯짝으로 직격했다. ‘천안함 자폭’ 등의 발언으로 이래경 전 민주당 혁신위원장이 임명 9시간 만에 낙마하는 와중에 고위 당직자의 망언까지 겹쳤다. 천안함 사건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2010년 북한 잠수정의 어뢰에 피격돼 침몰하면서 46명이 꽃다운 장병이 희생된 비극 아닌가. 그 비극을 자폭이라고 한 것은 호국 영령을 모독하며 안보를 뒤 흔드는 언사다. 정치는 ‘말’이다. 안보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국민을 하나로 묶어야 한다. 그 수단은 무력이 아니라 용기와 희망을 주는 언어다. 그리고 꾸준한 훈련과 내부 결속이 안보를 지키는 울타리다. 이른바 자강불식(自强不息)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아프간의 미군 철군에 대해 “스스로를 지킬 의지가 없는 나라를 위해 미군이 피를 흘릴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사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자신의 안보를 자신이 지킬 의사가 없다면 나라가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내 나라는 내가 수호해야 하고 동맹은 부차적이다. 자국의 안보를 외국에 의지하는 것은 풍랑에 휩쓸리는 돛단배의 운명과 같다. 과거 남베트남이나 2021년 아프간이나 적과 내통하는 간첩들의 이적행위는 나라가 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단단한 제방도 작은 틈새로 무너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