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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탄 뉴욕]뉴욕을 전세계인의 도시로 만드는 곳, 유엔(UN) 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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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을 전세계인의 도시로 만드는 곳, 유엔(UN) 빌딩

뉴욕 맨해튼의 상징적인 랜드마크 가운데 하나인 유엔(UN) 빌딩은 2차대전이 끝난 직후 다시는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전세계인들의 염원 아래 만들어진 국제연합(United Nations)의 본체이다. 전세계 평화의 상징인 유엔이 뉴욕에 위치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뉴욕은 미국의 일개 도시가 아닌, 전세계인들의 중심 도시로 몇 단계 레벨업되는 효과를 갖는다. 만약 지금 다시 유엔빌딩을 어느 나라에 세울지 공모라도 한다면, 아마도 올림픽 저리 가라 싶을 만큼 유치경쟁이 치열할 것이다. 그만큼 유엔빌딩이 갖는 국제적 의미는 대단하며 각별하다. 이 독특한 건물은 이 같은 역사적 중요성 뿐만 아니라 얼핏 보기에 단순하게 각진 것 같으면서도 부드러운, 곡선과 직선의 만남이 빚어내는 유려함이 매우 아름답게 느껴지는 현대 건축물의 백미(白眉)로서의 의미도 갖는다. 맨해튼 내에서도 약간은 한적한 동쪽 이스트강(East River) 한 모퉁이에 우아하게 서 있는 이 건물을 지나치노라면 전세계인들의 도시 뉴욕의 다차원적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2차대전이 끝난 후 승전 연합국들을 중심으로 국제연합 결성 움직임이 본격화되었고, 이 역사적인 국제기구의 소재지를 과연 어디로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논의는 잠시뿐, 당시 전쟁 종결의 일등 공신이자 최강대국인 미국에 위치해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었다. 이유는 단 하나. 2차대전을 통해 확인한 것처럼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 국제기구는 의미가 없다는 데 모두가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어디 도시로 해야 할까? 이 논제에 대해서는 미국내 후보지간 경쟁이 치열했다. 샌프란시스코, 필라델피아, 보스톤 등이 차례로 명함을 내밀었고, 뉴욕시는 가장 뒤늦게 후보지의 대열에 합류했다. 사실 뉴욕은 당시에도 악명높게 비싼 땅값으로 인해 뉴욕시 차원에서 유엔을 유치할 만한 자금을 충당하기 어려웠고, 빈곤한 재정에 처음부터 후보군에 명함을 내밀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유엔 대표부는 그래도 미국 최대 중심도시이며 국제 상업기지인 뉴욕을 내심 가장 선호했다고 한다. 여러 채널을 통해 대표부의 이 같은 의도를 파악한 뉴욕시는 어려운 재정여건을 해결할 타개책이 없는지 각계각층의 인사들과 머리를 맞대고 논의했다. 당시 뉴욕시에서 구성한 유엔 유치위원회에는 쟁쟁한 거물들이 포진되었는데, 뉴욕시장 드와이어(William O’Dwyer), 록펠러 가문중 한명인 모제스(Robert Moses), 뉴욕타임즈 창간자 슐츠버거(Arthur Hays Sulzberger), IBM 창립자 왓슨(Thomas J. Watson) 등이 그 멤버였다. 이들의 적극적인 물밑 노력 결과 결국 당시 전설적 거부였던 록펠러(John D. Rockefeller, Jr.)의 후원을 받아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성공한다. 처음 뉴욕시내 유엔빌딩의 후보지로 거론되었던 곳은 퀸즈(Quuens) 북부 공공 파크인 플러싱 메도우(Flushing Meadows)였다(매년 US Open 테니스대회가 열리는 곳). 뉴욕시는 이 지역을 무상임대하겠다고 유엔에 제안했는데, 유엔은 이 제안에 시큰둥하였다고 한다. 이유는 맨해튼에서 벗어난 외곽지역이라는 거였고, 유엔 유치위원회는 맨해튼 시내 미드타운 지역을 희망했다고 한다. 이에 최종 후보지로 선택된 곳이 지금 유엔빌딩이 위치한 미드타운 동쪽 터틀베이(Turtle Bay) 부근이었다. 당시 이 곳은 도축장과 공장이 즐비한 이스트강 연안지역으로 뉴욕시 입장에서도 내심 개발의지가 상당했던 지역이었다. 만약 유엔이 들어선다면 단번에 국제적인 이미지로 탈바꿈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결국 록펠러는 유엔 빌딩 부지로 미드타운 터틀베이(Turtle Bay) 지역을 850만달러에 매입하여 시에 기부하였다고 한다. 당시 850만달러는 시가에 비해 훨씬 높은 매입가였다고 한다. 뉴욕시도 유엔 직원용 아파트 1,612개를 제공하였다고 하는데, 결국 이같은 범뉴욕시 차원의 적극적 노력에 힘입어 1946년 12월 유엔빌딩의 뉴욕 유치가 최종 확정된다. 건축이 완료된 1950년 8월에는 최초의 유엔직원들이 이 건물로 입주하고, 뉴욕시는 미국 최대도시에서 한차원 업그레이드된 전세계 최중심 도시로 발돋움하게 된다.

필자는 맨해튼에 머물 당시 유엔빌딩에서 걸어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2번 애버뉴와 39번 스트리트 사이)에서 살았다. 매년 9월 유엔총회 시즌만 되면 이 일대 교통이 마비되고 골목마다 바리케이드가 설치되는데, 각국 대표단, 스태프, 프레스 등의 이동으로 인근 지역이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룬다. 이 기간 만큼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서 있는 뉴욕경찰(NYPD)이 지나가는 행인들을 일일이 검열할 만큼 경비가 삼엄하다. 한편에선 무언가 써진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무리도 여기저기 보인다. 이 기간중엔 유엔빌딩 근처 1번 애버뉴와 2번 애버뉴 사이의 호텔들은 당연히 만원을 이루고, 시내 호텔들도 대부분 일찍부터 매진되어 방을 구하기 어려워진다. 방을 구하더라도 부르는 게 값이어서 혹시 뉴욕 여행과 맨해튼에서의 숙박을 계획중이라면 유엔총회 시즌인 9월은 피하는 걸 적극 권하고 싶다.

유엔빌딩 맞은편 유엔플라자 건물

유엔빌딩은 너무도 유명한 뉴욕의 랜드마크지만, 사실 빌딩이 위치한 1번 애버뉴 터틀베이 지역은 그리 뉴욕스러운 지역은 아니다. 뉴욕시의 동쪽 끝 외곽이어서 밤늦은 시간에는 인적이 드물고, 상가도 그리 잘 형성되어 있지 않다. 맨해튼은 대체로 중심지역인 5번, 6번 애버뉴 쪽으로 갈수록 휘황찬란하고 동쪽 1번, 서쪽 12번 외곽으로 갈수록 한산한데, 이곳도 유엔빌딩만 덩그러니 있는 것같이 한적한 느낌이 든다. 다만 수많은 외교관들이 거주하는 고급 아파트들이 밀집해 있어 비교적 깔끔하고, 여기저기 유엔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 레스토랑들이 많은 점은 매력적이다. 도로변에 외교관 전용(‘Diplomat only’)이라고 써 놓은 파킹 표지판이 있는 경우가 많아 길거리 주차에도 특히 조심해야 한다. 맨해튼 다른 지역하고 똑같겠거니 하고 잠시라도 길거리에 주차했다간 5분내에 100달러 이상의 주차티켓이 차 윈도우 한구석에서 펄럭거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매일 퇴근길에 49번 스트리트로부터 39번 스트리트까지 1번 애버뉴를 걸어 내려오면서 바라보던 유엔빌딩은 평화로움 그 자체라고 할까. 늘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해주었다. 바로 앞 이스트강의 날아오르는 갈매기, 높은 건물 저 멀리 떠오르는 희미한 달무리 등 시끌벅적한 뉴욕 시내와는 사뭇 다른 평화롭고 아름다운 뉴욕을 그려주었다. 유엔빌딩 내부를 구경할 수 있는 어드미션을 받아 관람할 수 있다면, 특히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없어 내부를 관람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하더라도 건물 외부만 보는 것만으로 역시 좋은 경험이 되리라 확신한다. 이 거대한 석조건물의 역사적, 상징적 의미, 건축학적으로 아름답기까지 한 현대 건축물로서의 위용, 건너편 보이는 브루클린의 아름다운 정경 등 세계에서 하나뿐인 이 독특한 뉴욕의 랜드마크 앞에서 한참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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