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법정칼럼]민사소송의 증명책임에 관하여

신동일 춘천지방법원 판사

민사소송에서 소송당사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요건사실(자신에게 유리한 법률효과를 가져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합니다. 당사자가 요건사실에 대한 증거를 충분히 제출하지 못하면 유리한 법률효과를 받을 수 없는 불이익을 받게 되는데, 이를 증명책임이라고 합니다(예전에는 입증책임이라 했고, 실무에서는 두 용어 모두 쓰이고 있는 듯합니다). 민사소송 실무에서 자주 보았던 기본적인 증명책임 몇 가지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처분문서=계약서, 합의서, 약정서, 각서 등 당사자 사이의 법률적 합의사항을 내용으로 하고 당사자의 서명·날인이 있는 문서가 처분문서의 예입니다. 처분문서는 그 성립의 진정함이 인정되는 이상 법원은 그 기재 내용을 부인할 만한 분명하고도 수긍할 수 있는 반증이 없는 한 그 처분문서에 기재돼 있는 문언대로의 의사표시의 존재 및 내용을 인정해야 합니다. 추후 분쟁 가능성을 대비하기 위해 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① 법률효과를 받고자 하는 모든 사실을 ② 최대한 명확히 계약서에 기재하고 ③ 반드시 상대방의 서명 날인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계약에 관해 법적 분쟁이 생겨서 민사소송에 이르렀다면 자신에게 유리한 계약서를 법원에 제출한 당사자는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계약서 내용에 반하는 주장을 하는 상대방 당사자는 치밀하게 증거를 준비해 제출할 필요가 있습니다.

△금전 대여=원고가 피고에게 돈을 빌려줬다고 주장하면서 빌려준 돈의 반환을 청구하는 경우, 당사자 사이에 금전의 수수가 있다는 사실에 관해 다툼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를 대여했다는 원고의 주장에 대해 피고가 다투는 때에는 그 대여사실에 대해 이를 주장하는 원고에게 증명책임이 있습니다. 즉 원고가 피고에게 돈을 준 것이 증명됐더라도(민사소송에서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는 주요사실은 원칙적으로 증명된 것으로 봅니다), 피고가 빌려준 돈이 아니고 준 돈이라고 주장한다면, 원고가 빌려준 돈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합니다. 종종 원고가 연인인 피고에게 지급한 돈을 결별 후에 대여금이었다며 반환을 청구하고, 피고는 연인관계에서 용돈으로 준 돈이라고 반박하는 사건을 봅니다. 이 경우 원고가 대여 계약을 증명할 증거(피고의 서명·날인이 있는 금전 대여 약정서 등)를 충분히 제출하지 못한다면 패소하게 됩니다.

△변제 항변=원고가 금전 대여 등 피고로부터 지급받을 돈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이에 대해 피고는 변제 항변을 할 수 있는데, 쉽게 말하면 “이미 다 돌려줬으니 더 줄 돈이 없다”는 뜻입니다. 변제 항변을 하는 피고는 원고에게 돈을 줬고, 그 돈을 원고가 주장하는 채무의 변제를 위해 준 것이라는 증거를 제출해야 합니다. 돈을 갚는 사람은 분쟁 가능성에 대비해 돈을 받는 사람으로부터 ‘김철수의 이영희에 대한 xxxx. xx. xx.자 대여금에 대한 변제 명목으로 김철수는 이영희로부터 0000. 00. 00.에 ○○○○원을 받았다'는 등 변제 대상 채무, 변제액, 변제일, 변제한 사람과 변제받은 사람이 모두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변제받은 사람의 서명·날인이 들어간 영수증을 받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분쟁이 생겨서 민사소송에 이르렀는데 변제 영수증이 없다면, 아쉬운 대로 법원에 계좌이체 내역을 제출해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돈을 변제하면서 현금으로 주고 증빙자료도 남기지 않는 것은 큰 실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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