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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비대위원장의 역할

비상대책위원회를 줄여 비대위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이 명칭을 주로 정치 뉴스에서 접할 수 있다. 정당 대표가 선거 패배 등의 이유로 임기가 끝나기 전에 사퇴할 경우 차기 당 대표 선출까지 임시로 구성하는 당 지도부를 통상 비상대책위원회라고 명명한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비대위는 임시 조직이므로 짧은 기간만 존재해야 하는데 해당 정당이 너무 막장이면 비대위 체제의 기간이 정식 지도부 임기에 버금가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선거가 끝나면 선거에서 진 정당은 비대위원장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꼭 필요한 사람은 고사한다. 여야 불문하고 숱한 유력 인사가 비대위원장을 거쳐 갔지만,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의욕만 앞서 발을 담갔다가 망신을 당하거나 자신의 정체성만 애매해진 인사도 많다. ▼성공한 비대위원장 사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꼽힌다. 박 전 대통령은 2004년과 2011년 한나라당에서 두 번 비대위원장을 맡았다. 두 번째 때에는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꾼 뒤 강력한 공천권 행사로 2012년 총선에서 152석을 얻었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도 역할을 톡톡히 했다. 당시 민주당은 위기에 처했다. 즉, 2015년 12월 안철수 의원의 탈당으로 선거 전략에 차질이 빚어졌다. 민주당이 이 상황에 그를 영입했다. 그는 중도 인사를 적극 영입해 2016년 4·13 총선에서 123석을 차지하는 공을 세웠다. ▼4·15 총선에서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한 미래통합당 심재철 당 대표 권한대행이 지난 17일 오후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을 찾아가 당의 비대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제안했다. 이에 당내에서는 “유감스럽고 부끄럽기까지 하다”는 논평이 나왔다. 콩가루처럼 비치는 당에서 비대위원장의 '역할'이 어디까지 미칠지 궁금하다. '미래'와 '통합'을 강조하는 미래통합당이 그야말로 세대와 계층, 지역을 아울러 국민에 희망을 주려면 이번 선거 패인을 처절하게 분석하는 일이 비대위원장 영입에 나서는 일보다 선행돼야 하지 않을까.

권혁순논설실장·hsgweon@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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