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자 칼럼 신호등]불법주차 대형참사 부른다

김희운 강릉 주재

2017년 12월21일 충북 제천의 한 스포츠센터 건물 밖으로 연기와 함께 시뻘건 불길이 치솟았다. 촌각을 다투는 급박한 순간 출동한 굴절사다리 소방차들이 화재 현장 주변에서 더 이상 진입하지 못한 채 한참을 서 있었다. 스포츠센터 주변에 있던 불법 주정차 차량들 때문에 진입이 늦어진 것이었다. 결국 29명이 숨지고 40명이 중경상을 입는 등 최악의 참사가 빚어졌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의 아픔이 전 국민의 가슴에 그대로 남아 있던 2018년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기 위해 강릉 경포대를 찾은 일부 관광객이 경포119안전센터 앞에 불법 주차를 하면서 인근 도로 통행이 마비됐는데 당시 이 장면이 담긴 사진은 국민들로부터 공분을 샀다.

제천 화재 참사 이후 불법 주정차 차량으로 인해 인명피해를 키우는 상황이 생기면 절대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소방차 진입을 방해하는 차량을 강제 견인 처분할 수 있게 법이 강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도 골목길이나 이면도로에서의 불법 주정차는 쉽게 눈에 띈다. 제천 화재 참사 이후 관련 법은 강화됐지만 안전 불감증은 여전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강릉 경포하나마트 맞은편 소화전 주변 연석을 따라 표시된 주정차 금지구역에는 이를 비웃기나 하듯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지나가는 시민들은 “주정차 금지를 알리는 붉은색 표시가 눈에 확 띄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차주들의 불법 행위는 이어지고 있다”며 “운전자들이 표지판을 보고 스스로 불법 주차를 하지 않는 준법의식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도로교통법 32조에 따르면 소방용수시설 또는 비상소화장치가 설치된 장소로부터 5m 이내에 차량의 정차나 주차가 금지돼 있다. 또 지난해 8월 시행된 도로교통법 시행령에서 소방시설 인근 안전표지가 설치된 곳에 불법 주정차할 경우 기존 과태료의 2배를 부과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주정차 위반행위는 승용차가 4만~8만원, 승합차는 5만~9만원으로 과태료가 각각 인상됐다. 소방관뿐 아니라 경찰관, 시민 등 누구나 신고가 가능하다.

영국의 경우 소방관이 화재진압과 인명구조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차량 주인의 동의 없이 차량을 옮기거나 파손할 수 있는 '화재와 구출서비스법'을 2004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미국도 소화전 15피트(4.5m) 이내에 주차하면 50~100달러의 벌금을 내야 하며 화재 등 소방활동을 하는 경우 불법 주차 차량 또는 장애물을 임의로 이동시키거나 파괴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 어느 지역, 어떤 순간이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을 지키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불법 주정차 차량으로 인해 생명을 살리는 일에 차질이 빚어지는 후진국형 행태는 근절돼야 할 것이다.

차량 운전자들은 소방시설 주변에는 절대 불법 주정차하면 안 된다는 준법의식을 지녀야 한다. 화재 등 사고의 피해자가 본인의 가족일 수도 있다는 경각심이 필요하다. 시민들의 준법의식과 경각심을 기대해본다. 그러나 불법 행위가 끊이지 않는다면 강력한 단속이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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