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사소송 절차에서 범죄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해 주기 위한 제도가 여럿 마련돼 있다. 그중 형사 배상명령 제도를 소개하고자 한다. 배상명령이란 형사사건의 대상이 된 일정한 범죄행위의 피해자가 그 배상청구권을 당해 형사재판 절차에 부대해 행사하는 제도로서,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소촉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타인의 불법행위로 손해를 입은 사람은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해야 하는데, 별도의 민사재판 절차를 거치는 수고를 덜기 위해 마련된 것이 바로 배상명령 제도다.
그 대상이 되는 범죄는 상해, 중상해, 상해치사, 과실치사상, 절도, 강도, 사기, 공갈, 횡령, 배임, 손괴, 일부 성범죄 등이다. 위 범죄로 인한 직접적인 물적 피해, 치료비 손해 및 위자료에 대해 배상명령 신청이 가능하다(위 범죄 및 피해 유형에 속하지 않더라도 피해자와 피고인 사이에 합의된 손해배상금에 대해서는 배상명령을 할 수 있다, 소촉법 제25조 제1항, 제2항).
현재 형사항소부 판사로 근무하면서 배상명령 신청 사건을 접하고 있는데, 주로 보이스피싱 범죄의 피해자, 인터넷 거래사기, 투자 사기 등 사기죄 피해자, 상해 피해자 등이 배상명령 신청을 한다. 다만 배상명령 신청 자체를 각하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데, 배상명령 신청 시 주의해야 할 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피해자는 제1심 또는 제2심 공판의 변론이 종결될 때까지 사건이 계속된 법원에 배상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 그런데 상당수의 배상명령 신청이 제1심이나 제2심의 변론종결 이후에 제기돼 각하 결정을 받는다. 제1심에서 각하 결정을 받을 경우 그 결정에 대해 불복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항소심에서 다시 동일한 내용의 배상명령 신청을 하더라도 제1심의 결론이 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배상명령 신청의 시기가 있음을 유념해 대상 범죄의 공판이 진행 중일 때 배상명령 신청을 해야 한다. 다음으로, 소촉법 제25조 제3항은 배상명령을 해서는 안 되는 경우를 규정하고 있다. 주로 '피해 금액이 특정되지 않은 때', '배상 책임의 유무 또는 그 범위가 불명확한 때'에는 배상명령을 하기에 적절하지 않아 각하 결정을 해야 한다. 예컨대, 절도 피해 금액이나 사기 피해 금액이 분명할 경우에는 배상명령이 가능하다. 하지만 사기 피해 금액 중 일부가 변제됐는데 그 잔여 피해 금액의 범위가 불분명한 경우, 상해 치료비의 범위와 그 금액에 다툼이 있는 경우 등에는 배상명령이 부적법해 각하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배상명령을 신청할 때에는 그 배상을 구하고자 하는 손해가 소촉법에서 정한 손해의 유형에 해당하는지 여부 및 그 피해 금액이 특정되는지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배상명령 제도를 활용하는 피해자가 많지는 않다. 물론 형사사건에서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나 피해 회복 여부가 중요한 양형 요소이기 때문에 형사합의 과정에서 그 피해를 변제받는 경우에는 굳이 배상명령 제도를 활용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형사소송 과정에서도 피고인으로부터 자발적인 피해 변제를 받지 못했을 경우 배상명령 제도를 활용해볼 만하다. 피해자 권리 구제를 위한 목적으로 배상명령 제도가 마련된 것이므로 피해자가 법에 따라 권리를 행사하고, 법원 역시 그 입법 취지에 따라 기준을 정립해 나가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