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비는 무엇인가? 이 물음은 어쩌면 조선조 600년을 대변하는 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조선조를 지탱해 온 정신은 선비정신이기 때문이다. 조선조 600년을 분명하게 하나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든 평가를 한다면 선비정신을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우리는 조선조의 선비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하고 과오(過誤)와 포폄(褒貶)을 분명하게 평가하고 넘어가야 한다.
조선조는 선비 사회였음이 분명하다. 선비는 조선조 지식인이 가지고 있는 삶의 표본이었다. 그것도 글을 아는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을 지킬 수 있는 최고의 바탕이었다. 그 때문에 조선조의 선비는 벼슬을 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의병 곽재우나 류인석, 그리고 승병 서산대사나 사명대사처럼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선비의 체면을 지키고자 목숨을 바쳤다. 선비정신은 신분과 종교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리고 선비가 칭찬을 받았던 이유는 누구보다 먼저 행동으로 모범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럼 선비정신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 물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선비정신은 만인의 표상이며 모범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정신은 사랑과 악에 대한 척결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곧 인의(仁義)였다. 인은 어짊이요, 의는 옳음이다. 어짊은 사랑이고, 옳음은 의리다. 그래서 선비는 어짊과 옳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다. 어짊은 다른 말로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의리(義理)는 모든 악행에 대한 척결이다. 조선조의 선비는 인의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고 그를 실천하고자 했다.
조선조에서 가장 큰 혼란은 첫째로 백성을 돌보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살아온 관리들의 당파싸움이었다. 둘째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구한말 일제의 횡포 같은 외세의 침략이었다. 모두 척결해야 할 대상이었다. 600년 내내 당파싸움을 비롯해서 일본과 중국의 침략이 조선조의 국운을 좌우하고 있었다. 이럴 때마다 목숨을 걸고 앞장섰던 사람들은 선비였다. 사실 임진왜란 때 일본의 침략을 물리치고 병자호란 때 중국의 침략을 물리치고 구한말 일본에 대항해 싸워 한국의 독립을 위해 앞장섰던 사람은 군인도 관원도 아니었다. 군인과 관원과 백성이라는 이름에 앞서 우뚝했던 사람은 모두 선비였다. 선비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의 행동이었다. 그들이 나라를 지켜 오늘 우리가 있게 했다.
선비정신은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빛을 발했던 정신이었고 행동이었다. 선비는 조선조의 봉건적 유물이 아니다. 선비정신은 조선조에 이어 오늘 우리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다.
그 가운데 춘천사람으로 임진왜란과 구한말 일제침략에 맞서 싸웠던 선비들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과 원균 장군의 아장으로 활약한 한백록 장군, 구한말 의병에 참가한 류인석, 이소응, 지용기, 윤희순 등이다. 한백록은 장군이기 이전에 선비였다. 그래서 옥포해전과 한산도대첩에서 목숨을 바쳐 인의를 실천하고자 했다. 우리의 첫 해전사에 길이 그 이름이 남는 것은 그가 몸소 선비정신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류인석은 13도의군도총재를 맡아 의병을 이끌며 싸웠다. 우리가 일제의 강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초석을 놓고 끝까지 싸워 광복을 맞게 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분들이 그랬듯이 선비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 인의는 이 시대 평화와 번영의 기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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