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현재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민사합의부 및 항소부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최근 들어 우리 재판부에 증서진부확인의 소가 빈번하게 접수되고 있으므로 아래에서는 증서진부확인의 소에 관해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 민사소송법에서는 원칙적으로 권리 또는 법률관계만을 확인의 소의 대상으로 하나, 분쟁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한 차원에서 법률관계를 증명하는 서면이 진정으로 작성됐는지 여부의 사실 확인을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민사소송법 제250조). 즉, 증서진부확인의 소의 대상은 '법률관계를 증명하는 서면'에 국한되는데, 여기서 '법률관계를 증명하는 서면'이란 그 기재 내용으로부터 직접 일정한 현재의 법률관계의 존부 여부가 증명될 수 있는 문서를 가리키고, 단지 과거의 사실관계를 증명하는 서면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대법원 2001년 12월14일 선고 2001다53714 판결 등 참고). 예컨대 계약서, 약정서 등 처분문서가 아닌 단순한 사실 또는 의견을 적시하는 것에 불과한 보고서, 탄원서, 세금계산서, 인감증명서, 영수증 등은 애초에 증서진부확인의 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 외에 증서진부확인의 소도 일반적인 확인의 소와 마찬가지로 확인의 이익이 있어야 한다. 가사 법률관계를 증명하는 서면이 진정하게 작성됐는지 문제된다고 하더라도 증서진부확인의 소가 당사자 사이의 현존하는 법률관계의 불안·위험을 제거하는 데 유효하고 적절한 방법인 경우에 한해 증서진부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자면 법률관계를 증명하는 서면이 진정하게 작성됐는지 의심이 된다고 하더라도 당사자들 사이에 문제되는 법률관계가 그 서면과 무관한 별도의 합의에 기한 법률관계인 경우 당사자로서는 상대방 당사자를 상대로 위 합의에 기한 청구를 하면 족할 뿐이므로 증서진부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는 없다(대법원 1991년 12월10일 선고 91다15317 판결 등 참고). 또한 어느 서면에 의해 증명돼야 할 법률관계를 둘러싸고 이미 소가 제기돼 있는 경우에는 그 소송에서 분쟁을 해결하면 되므로 그와 별도로 그 서면에 대한 진정 여부를 확인하는 소를 제기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확인의 이익이 없으므로(대법원 2007년 6월14일 선고 2005다29290, 29306 판결 등 참고), 손해배상청구소송 등 다른 소송을 제기하면서 당해 소송에서 문제되는 서면을 이미 증거로 제출했다면 그 이후에 제기된 증서진부확인의 소는 확인의 이익이 없다.
앞서 살핀 요건들을 갖추지 못한 증서진부확인의 소는 소의 이익이 없어 각하된다. 안타깝게도 최근 우리 재판부에 접수되는 증서진부확인의 소는 대부분 법률관계를 증명하는 서면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고, 그나마 법률관계를 증명하는 서면에 해당할 여지가 있는 서면에 대한 증서진부확인의 소도 확인의 이익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아마도 당사자는 억울하고 절박한 마음에 어디선가 잘못된 조언을 듣고 이와 같은 소송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다른 적절한 방법을 취했더라면 당사자가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부디 이 글을 통해 당사자들이 보다 적합한 권리구제절차를 찾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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