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랭킹 1위 중국 커제 9단이 구글의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완패했다. 커제는 알파고에 대해 “이길 수 없는 상대니 신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알파고의 바둑을 평가할 방법이 없다”고 평가했다. 많은 전문가도 인간이 알파고의 벽을 넘기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며 문득 미래는 알파고가 신이 되는 세상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우려가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바둑은 흑·백돌을 번갈아 올려 반상의 361집(가로·세로 19줄 교차점)을 점령하는 수싸움이다. 단순하게 계산할 수 있는 경우의 수만 361팩토리얼. 10의 170제곱에 해당하는 숫자다. 바둑에는 우주처럼 무한한 공간이 담겨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인간은 5,000여년이 걸렸다. 하지만 놀라운 속도로 진화하는 알파고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 같은 영화가 떠오른다. 이제 바둑을 지배하는 최강자는 인공지능이다. ▼인간 최고수가 '바둑의 신'과 한 판 붙으려면 몇 점을 깔고 둬야 할까. 일본 바둑계를 호령했던 대만 출신 기사 임해봉은 '그냥 대국이라면 석 점, 목숨을 건 내기라면 넉 점까지 놔야 될 것'이라고 했다. 알파고 제작사인 딥마인드는 지난 24일 “알파고가 1년 사이 3점이 늘었다”고 발표했다. 커제나 이세돌 9단조차 3점 치수란 뜻이다. 임해봉이 말한 신과 인간의 치수다. ▼“지금의 알파고는 인간을 이기기 위해 학습하지만, 앞으로는 인류를 위해 과학의 어려운 과제를 해결할 것이다.” 이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알파고와 인간의 복식 바둑대국이 26일 열렸다. 인간과 알파고가 한 팀이 돼 바둑을 뒀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바둑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배워 나가는 첫발을 내디뎠다. 신이 인간을 돕는 시대를 열어야 할 때다.
박종홍논설위원·pjh@kw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