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생물이야기]벌을 부르는 `밤꽃 향기' <992>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스페르민 성분 사람 정액 냄새 비슷

벌이 활동하는 시간대에만 향 분비

밤나무는 참나뭇과(科)의 낙엽교목(落葉喬木)으로 산기슭이나 밭둑 같은 마른 땅을 좋아한다.

세계적으로 13품종이 있으며, 한국에서 재배하는 품종(品種)은 우리 재래종을 개량한 것이거나 일본 밤이다. 밤나무와 참나무 무리와는 아주 가깝다. 상수리나무 잎사귀와 밤나무 잎은 꼭 빼닮아 구별이 힘들고, 겨울에도 끝내 마른 잎을 매달고 있어 잎자루의 끝자락이 다음 해 움틀 앳된 여린 동생 싹을 보호하는 것까지도 유사하다. 잎은 양날의 끝이 뾰족한 의료용 칼(바소)과 비슷하고 잎 둘레에는 날카로운 톱니가 물결 모양으로 띄엄띄엄 나 있다.

밤나무는 암수한꽃(양성화)으로 수꽃은 동물꼬리 모양의 긴 꽃 이삭에 여럿이 붙었고, 암꽃은 그 아래에 2∼3개가 매달린다. 밤꽃은 다른 식물들이 다 그렇듯이 아무 때나 냄새를 풍기지 않으며 벌이 올 수 있는 시간대에만 향기를 피운다. 꽃향기도 애써 만들어낸 에너지덩어리라 함부로 뿜어버리지 않는 법. 그런데 그 밤꽃에서 사람 정액(精液·Semen) 향이 진동하는 것은 둘 다 특유한 양향(陽香)이라고도 부르는 '스페르민(Spermine)'이란 물질(성분)이 든 탓이요, 벌은 그 향긋한 냄새를 맡고 멀리서 허위허위 찾아든다.

밤이나 감 같은 유실수들은 한 가지에 커다랗고 맛있는 과일이 열리는 수가 있으니 이를 '가지변이'라 하는데, 이는 돌연변이가 일어난 것이다. 요상하게도 개량종 밤을 심은 자리에 떡하니 돌밤(산밤나무)이, 감씨에선 고욤나무, 귤씨에서 탱자나무, 배씨에서 돌배나무가 난다. 밤송이는 산밤나무를 품었었고 홍시는 고욤나무를 안고 있었구나. 어찌하여 씨알 굵은 개량종 감의 씨를 심었는데 야생종 고욤이 불쑥 튀어나오는 걸까? 씨방은 돌연변이로 달착지근하고 주먹만 하게 변했지만 밑씨는 초지일관 고욤이라는 야성을 그대로 대물림하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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