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생물이야기]배탈 난 아이에게 쑥즙 먹이시던 어머니<988>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요새는 좋은 약이 넘치지만 필자가 어릴 적만 해도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 비교가 좀 뭐하지만 그때는 지금의 북한, 아프리카의 어린이 꼴이었다. 참쑥은 다른 식물이 가지고 있지 않은 특수한 자기방어물질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이 약이 됐다. 쑥의 씁쓰레한 맛과 향긋한 향기는 치네올(Cineol)이란 물질 때문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 해마다 여름 설사로 한 철을 보냈던 나다. 알고 보니 만성대장염(慢性大腸炎)이었던 것이다. 요새는 좋은 약이 있건만 그 시절에는 쑥물 아니면 벼 잎사귀 끝에 묻은 이슬이 약이었다. 모두 그 일은 어머니 몫이다. 여기 참쑥에서 어머니를 만난다. 어머니는 생쑥을 콩콩 찧어 삼베보자기로 짜서 쑥 국물을 먹였다. 지금 생각해도 국물이 소태같이 써서 소름이 끼친다. 어머니는 입에 쓴 약은 몸에 좋다고 날 달래시면서 설탕 한 숟가락을 입에 넣어 주셨다. 요새 설탕이 건강에 어쩌니 하는데 내 귀에는 같잖은 소리로 들린다. 그때는 설탕은 약이었다. 그럼 나락(벼)잎의 이슬은 어떤 약효가 있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그 이슬은 강한 알칼리성으로 위가 쓰리고 아플 때 먹는 제산제(制酸劑) 역할을 했을 터다. 어머니는 햇살이 비치기 전 이른 새벽녘에 논에 나가 바가지로 쓱쓱 휘둘러 이슬을 모았다. 서럽고 애달픈 세월이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그리고 참쑥은 지혈제(止血劑)로도 쓴다. 꼴을 베다가 낫에 손을 베었을 때 쑥을 한 옴큼 비벼 베인 곳에 문지르면 피가 금방 멎었다. 또 갑자기 코피가 날 때 쑥 잎 뜯어 코에 넣었고, 멱을 감을 때 귓구멍 마개로도 쑥을 썼다. 쓱쓱 비벼 적당히 눌러 쑤셔 귓구멍에 끼운다. 어머니가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그렇게 애타게 타일렀건만 자식 놈은 물속에서 피라미가 되어 놀았었다. 어머니, 미안합니다. 애들이란 다 그런 것이라지만 그 당시 워낙 철딱서니가 없어서…. 쑥이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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