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펜이 칼을 이긴다고 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 말이나 글로 하는 것보다 둔탁하고 저급하다고 간혹 생각한다.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무력을 사용하는 것보다 효과적이고 피해도 적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것은 어떤 말과 글이며 어떤 무력이냐 하는 것이다. 그릇되게 무력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바르게 무력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말과 글을 좋은 곳에 사용하기도 하지만 악용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역사적 인물 중에는 문무를 겸비한 분들이 있다. 어느 쪽을 선택했느냐보다 어떻게 사용했느냐를 생각하게 하는 분들이다.
토론주제 - 문신과 무신
거란 침략 막아낸 조충 장군
■신문자료 :
강원일보 [역사 속의 강원 인물] 2013년 8월1일 12·13면
강원일보 [강원문화순례] (35) 2006년 9월26일
1170년(명종 원년)은 정중부 등에 의한 무신정변으로 인해 고려 무신정권이 성립된 때다. 당시 문벌 귀족 중심의 문신정치가 행해지면서 무관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다. 국가의 재상은 모두 문신이 차지했고, 군대의 지휘권마저 문신이 장악하고 있었다. 국가를 위해 피와 땀을 흘린 공로는 모두 문신들이 가져가버리고 무신은 오히려 천대만을 받았다. 문신들의 부패가 극심해지자 무신들은 무력으로 정치를 장악하게 된다. 무신들이 일으킨 정변은 왕권을 옹호하려는 친위 쿠데타의 성격이 강했다. 그 후 100년 동안 무신들은 정치의 실제적인 세력이 된다.
무신정변이 일어난 다음 해인 1171년 횡성군 공근면 상동리에서 한 인물이 태어났다. 횡성 조 가(家)의 7세손인 조영인(1133~1202년) 장군의 차남으로 태어난 조충 장군이다. 부친은 일찍부터 문과에 급제해 주요 관직을 거쳤고, 그의 도움을 입은 조충 장군은 젊은 나이에 관직으로 나아갔다. 부친 조영인 장군과 마찬가지로 조충 장군도 문신 출신이면서 외교와 국방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능력은 아들인 조계순 장군에게까지 이어진다.
삼대에 걸친 문신과 무신을 겸비한 이들 가문의 뛰어난 능력이 특히 고려 무신정권 아래에서 발휘되었다는 것이 더욱 놀랍다. 이들 삼대에 걸친 장군은 무신정권 시대에 문신으로 관직에 나아가 백성을 잘 다스리다가, 국가가 외교적으로 중요한 시기를 맞이할 때는 무신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분들이었다. 조영인, 조충, 조계순 장군이 무신의 높은 직책인 '원수'를 지냈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이분들을 '고려의 삼원수'라 부른다.
조충 장군이 활동하던 시기에 거란과 여진의 침입이 자주 있었다. 몽고가 남하하면서 거란을 압박하자 거란은 군대를 몰아 고려를 침략하기에 이르렀다. 고려는 몽고와 연합하여 거란군을 공격했다. 1차 전투에서 조충 장군이 이끄는 고려군이 패했다. 조충 장군은 패전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그러나 2차 거란의 침략에 맞선 조충 장군은 실패를 바탕 삼아 뛰어난 전략을 펼쳐 승리를 이끈다. 이때 포로가 된 거란군을 여러 지역으로 분산시켜 정착하게 했다.
조충 장군은 지혜와 덕을 겸비한 지휘관이었기 때문에 당시 고려인들이 그를 최고의 덕장이라 불렀다. 이것이 무신정권 핵심인물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정도였다. 한편 연합군이었던 몽고군 앞에서도 담대함과 강인한 용기를 보여주어 형님의 대우를 받았다. 이로 인해 연합군의 지휘권을 얻기도 했다. 조충 장군은 우리 역사적 인물 중에 완벽하게 문무를 겸비한 보기 드문 인물이다.
△토론 1. 정치는 반드시 문신이 해야 하는가? 무신은 정치를 해서는 안 되는가?
△토론 2. 고려의 무신정권 시대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토론 3. 그릇된 문신이 있을 수 있는 것처럼 올바른 무신이 있을 수는 없는가?
이정배 강원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