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힘은 장사라 대성할 줄 알았는데 …”

홀 어머니가 포장마차 하면서 뒷 바라지…쓸쓸히 마지막길 떠나 안타까움 더해

◇1988년 9월17일 촬영한 제24회 서울올림픽 한국역도선수단 사진. 왼쪽에서 첫 번째가 전병관 경희대 교수, 여섯 번째가 고(故) 김병찬씨다.

비운의 역도 선수 故 김병찬

남춘천중 은사 신정섭씨 소회

“악착같이 운동하던 병찬이

생전 어머니 끔찍하게 생각”

역도인 50여명 참석 발인

속보=“힘은 장사라 대성할 줄 알았지….” 아시안게임 역도 금메달리스트인 고(故) 김병찬(46)씨(본보 6월29·30일자 5면 보도)의 남춘천중 재학시절 담당 체육교사였던 신정섭(62·강원체고)씨는 지난 30일 이같이 소회하며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신씨는 “1983년에 남춘천중 체육교사로 처음 부임하면서 당시 역도부 2학년인 병찬이를 처음 만났다”면서 “자세는 정확하게 잡히지 않았지만 천부적인 힘을 타고 나서 연습만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대성할 선수가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신씨가 본 당시 김병찬 선수의 장점은 또 있었다. 남들보다 더한 도전적 성격이었다. 그는 “병찬이가 2학년 때 1학년 선수들을 자주 공동묘지로 데리고 갔다”면서 “공포와 두려움에 항상 도전하고 악착같이 운동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이어 “도전이 과하면 반항이 되기 마련”이라며 “결국 반항적인 성격이 병찬이의 자기관리를 가로 막은 것 같다”고 강조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김씨가 운동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곁에서 항상 어머니가 포장마차를 운영하면서도 뒷바라지를 해줘서다. 김씨가 생전 어머니를 끔찍하게 생각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신씨는 “반항을 하면서도 엄격한 어머니 앞에서는 순한 양과 같을 정도로 어머니를 극진하게 모셨다”며 “2013년에 지병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병찬이의 상실감은 극에 달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또 “불의의 사고로 머리만 다치지 않았다면 선후배들이 병찬이를 다그치고 잡았을 것”이라며 “자기관리만 됐다면 당시 전병관을 뛰어넘었을 것”이라고 씁쓸해 했다.

한편, 김씨의 시신은 도내 역도인 5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날 오전 발인을 거쳐 춘천안식원에 안치됐다.

강경모기자 kmriver@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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