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몰랑'이 뜨고 있다. 얼추 '아~ 몰라'를 변형시킨 단어 같긴 한데 요즘 흔히 생겼다 사라지는 신조어들과는 다른 양상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을 장악해 가고 있다.
'오포세대'처럼 세태를 꼬집는 신조어도 아니고, 얼마 전까지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 유행한 의성어 '두앙(Duang)'처럼 의미는 모른 채 놀이처럼 부르는 단어는 더더욱 아니다. 형태는 PC통신 시절 쓰이던 '어솨요(어서오세요)' '방가(반갑다)' '안냐세염(안녕하세요)'처럼 철자법을 내 맘대로 바꾼 케이스이긴 하지만 갈등(?) 속에서 태어나 치열한 논쟁을 거쳤고 사회적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확대·재생산되고 또다시 논쟁거리를 낳고 있는 참으로 특이한 '신조어'다.
논리없이 주장만 펴는 SNS글 홍수
'무지·무책임' 세태 인터넷서 풍자
여성 비하·정부 비판 폭넓게 사용
"언론 무분별한 사용 자제" 의견도
■'아몰랑' … 넌 어디에서 왔니?=인터넷에서 '아몰랑'을 검색해 보자. 엄청난 검색 결과가 나오지만 명확한 정의는 찾을 수 없다. 인터넷 백과사전이라고 불리는 '위키백과 한국어판(ko.wikipedia.org)'에서조차 아직 개념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따끈따끈한 단어임은 분명하다.
대신 네티즌과 일부 언론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아무런 논리 없이 주장만 펼치고, 설명을 요구하면 대충 넘어가는 모습”을 '아몰랑'이라고 부른다고 정의하곤 한다. 그럼 이 단어는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난 걸까? 네티즌들이 올린 수많은 글과 캡처 등 수사기록(?)을 토대로 그 과정을 역추적해 보면 한 여성의 SNS(페이스북) 글과 그에 대한 댓글에서 유래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그 여성은 “나라가 이 꼴인데 누굴 믿고 살아야 하냐”는 내용의 글을 올렸고, 이글을 읽은 누군가가 이유를 묻자 “비리가 너무 많다”는 답글을 다시 올렸다. 무슨 비리가 많냐고 재차 이유를 묻자. “몰랑! 그냥 나라 자체가 짜증나”라고 대답했다.
이 문답 장면은 고스란히 캡처돼 인터넷 커뮤니티로 퍼져 나가면서 유행하게 됐고, 특히 '김치녀'라는 표현을 쓰며 여성 혐오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일간베스트 저장소 등에서 여성을 비하하는 말로 쓰이게 됐다. 심지어 프랑스 왕정복고 시기에 '아몰랑 공주(Amolant de Yeausie)'가 있었다는 정체불명의 글까지 만들어져 인터넷상에 나돌고 있다. 프랑스 마르세유 인근의 작은 마을 여시(Yeausie)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났다는 그럴듯한 설명까지 붙어 있지만 내용은 대부분 여성을 비아냥과 조롱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남·여 성대결로 비화 … 다시 '메르스'로 옮겨가=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지난달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이른바 '여시(여성시대) 사태'가 바로 그것이다.
여성시대 회원들이 개그맨 장동민의 과거 여성비하 발언을 문제 삼고, 웹툰작가 레바의 작품이 여성 혐오를 조장했다는 등의 문제 제기를 하면서 남성 커뮤니티가 '발끈'한 것이 발단이 됐다. 방송통신위원회 고발이 이어지는 등 남녀 인터넷 커뮤니티 간의 진흙탕 싸움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아몰랑'이란 단어가 다시 등장하게 됐다. 남성 커뮤니티 회원들은 여시 회원들이 논쟁을 벌일 때 논리적이기보다는 자신들의 주장만 내세우고 '아몰랑'하고 줄행랑친다고 비난했다.
결국 별다른 의미 없이 쓰였던 단어가 인터넷 공간에서 벌어진 남녀 간의 성대결로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엄청난 '함의'를 가진 단어로 바뀌어 버리는 꼴이 되어 버렸다.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한창 인터넷상에서 '전쟁'이 벌어질 무렵, 국내에 메르스가 확산되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정부를 질타하는 내용의 단골메뉴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의 부실한 초기 대응과 함께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모습에 네티즌들은 또다시 '아몰랑'을 꺼내 들었다. 아몰랑의 뜻과 딱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 소셜 매트릭스(www.socialmatrix.co.kr)에서 아몰랑을 검색하면 메르스, 감염, 정부, 대통령, 보건복지부 등이 연관어 상위순위를 차지하는 것만 봐도 '여성'에서 '메르스'로 이슈가 이동된 것을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여성을 비하하기 위해 쓰인 말이 확대·재생산되면서 메르스 사태를 비꼬는 용도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며 “단어가 생겨난 배경이 있는 만큼 언론 등에서의 무분별한 사용은 자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석기기자 sgtoh@kw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