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 당시 결정적 공로 세운 故강승우·오규봉·안영권
9사단 전 장병 오 하사 위한 기념비 건립 모금에 나서
목숨을 던져 도내 최대 곡창지대 철원평야를 사수했던 백마고지 3군신(軍神)이 후배 장병들의 손에서 61년 만에 부활한다.
철원평야를 뒤로한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일대의 철책선은 작은 고지에서 유독 북쪽으로 돌출돼 있다.
고지는 우리 영토지만 양옆의 평야는 모두 북한 땅이다. 백마고지라고 불리는 이곳에선 철원평야는 물론 서울과 철원읍 내로 향하는 길목을 한눈에 볼 수 있다.
1952년 10월6일 철원평야를 얻기 위해 중공군 4만4,000여명이 백마고지 총공격에 나섰다.
열흘간 6·25 단일전투 역사상 가장 많은 27만 발의 포탄이 떨어지고 고지의 주인이 12번이나 바뀌는 백마고지 전투의 서막이었다. 10번의 전투 끝에 고지를 빼앗긴 국군은 마지막 총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1분에 수백발의 총탄을 뿜어내는 기관총의 화염에 전멸위기까지 내몰렸다.
결국 당시 22세의 강승우 소위는 오규봉 안영권 하사와 함께 직접 TNT폭탄을 몸에 묶고 수류탄을 든 채 적 진지로 뛰어들어 자폭했다. 이들이 혈로를 뚫어 국군은 백마고지를 재탈환했고 이후 2번의 파상공세를 막아내며 철원평야를 우리 영토로 만들었다.
강승우 소위와 오규봉 안영권 하사는 1953년 을지무공훈장을 받고 이후 백마3군신(軍神)으로 추앙받게 됐다.
그러나 이들의 희생은 금세 잊히고 말았다.
강승우 소위와 안영권 하사는 유해조차 찾지 못했다. 그나마 이들은 자손들과 지역사회의 노력으로 고향인 제주와 전북 김제에 추모비가 세워지고 매년 추념식이 열린다.
자손이 없었던 오규봉 하사는 추모비는커녕 철원에 있는 백마고지 전적비 전사자 명단에 '오귀봉'으로 기재되는 굴욕까지 맛봐야 했다.
오규봉 하사의 동생이자 형과 같은 백마부대에서 근무한 오세훈(77·충남천안)씨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육군은 뒤늦게나마 영웅에 대한 감사와 사죄에 나섰다. 군은 지난주부터 육군9사단 백마부대의 주도로 오규봉 하사 기념비 건립을 위한 모금활동에 나섰다.
9사단 관계자는 “부대 내에 3군신상을 세우고 매일 헌화하며 선배 전우의 희생을 기려왔다”며 “나라를 위해 희생했던 오규봉 하사를 위해 전 장병이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오규봉 하사의 동생 오세훈씨는 “자손이 없어 국가유공자 혜택도 누리지 못하고 형을 기리기 위해 지역사회에 도움도 요청했지만 허사였다”며 “죽기 전에 형에게 보답하지 못할 것 같아 한이었는데 늦게나마 너무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기영기자 answer07@kw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