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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67주년 특집]“95세부터 5살까지 한지붕 아래…세대 갈등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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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를 연다]춘천시 서면 덕두원리 4代 가족의 알콩달콩 사는 이야기

“4대가 함께 살아가면서 어떻게 행복하냐고요?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위하는 마음이죠.”

춘천시 서면 덕두원리에 사는 김덕기씨의 아담한 양옥집을 찾았다. 화려하게 치장되지 않은, 아담하면서 전형적인 농촌개량주택의 모습이었다. 이 집은 90대 할머니부터 아직 10대 축에도 끼지 못하는 어린이까지 4대가 알콩달콩 살아가고 있다. 부부단위, 혹은 개인단위로 쪼개지는 핵가족 시대를 맞아 어느덧 대가족은 꿈같은 이야기로 치부되는 게 세태의 흐름이 돼버렸다. 김덕기(69)·신명례(63)씨 가정은 이러한 꿈같은 이야기가 현실이다.

뭐니뭐니 해도 '화목'이 원동력

집에 구심점은 시어머니,

고령의 시어머니와 자녀·손주 보듬어

지극 정성 효심에 효부상 받기도

아침 밥상에는 꼭 다같이 앉아

별난 얘기 쏟아지는 소통의 창구

4대가 기쁘고 슬픈 일 함께하며 의지

참으로 감사하다는 말 밖에는···

남들과 조금은 다르게 4대로 살아가는 게 어떤지 궁금했다. 어떻게 4대가 같이 살게됐는지 다짜고짜 물었을 때 “별거 없어요” 하면서 손사래를 쳤지만, 한사코 알려 달라는 요청에 조금씩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먼저 이 집의 가족 구성을 살펴보자. 백춘원(95) 할머니와 김씨 부부, 김씨의 장남 김진성(38)·이영숙(36)씨 부부, 그리고 김씨 부부 손자인 지수(7)와 현수(5) 형제. 이렇게 7명의 가족으로 구성돼 있다.

설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이 되면 아무래도 큰 어르신이 계신 이유로 자연스럽게 가족·친지들이 꼭 찾는 코스다. 가족·친지들이 모두 모이면 어림잡아 40여명 정도라고 한다. “북적거리고 정신이 없죠. 그래도 사람 사는 재미 아니겠어요?” 며느리 영숙씨의 말이다.

김씨 가족이 현재와 같은 4대 가족이 된 이유는 지극히 단순했다. 진성씨 부부의 첫아들 지수가 태어나면서다. 또 하나의 이유라면, 직장다니는 영숙씨를 배려한 김씨 부부의 마음에서다. 직장생활 탓에 집안 일은 영숙씨의 시어머니이자 백춘원 할머니의 며느리인 신명례씨 몫. 그러나 신씨는 며느리의 처한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며느리도 어머니의 헌신적인 가족 사랑에 늘 미안함이 앞선다.

진성씨와 영숙씨 부부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다.

며느리 영숙씨 말을 빌리면, “엄밀히 따져서 모시고 사는 게 아니예요. 우리 부부가 부모님댁에 얹혀 사는거지…”

공무원 부부인 진성씨 내외는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아침이면 남편은 화천군청으로, 아내는 춘천시청으로 출근하기 바쁘다. 부부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부모를 모시고 살아가는 게 힘들 법 하지만, 오히려 감사히 여기고 있다. 아이들을 잘 돌봐주어서가 아니다.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펴주고 걱정해주는 부모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존재라 여기기 때문이다.

며느리 영숙씨는 요즘 같은 시대에 4대가 함께 살아가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하지만, 세상에서 '보람된 일'로 되어버린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고 여긴다. “저는 직장을 다니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시부모님께 많이 의지하고 있어요. 집안에 대소사의 일도 거의 시부모님이 하고 계십니다. 보람된 일이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4대가 함께 기쁜 일과 슬픈 일을 공유하며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참으로 감사한 말 밖에 생각나지 않네요.”

4대가 함께 살아가면서 화목하지 않는다면, 어찌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김덕기씨 집안에서 '화목'이 그 원동력이 된다.

이들 가족을 면면히 살펴보면, 집에 구심점은 영숙씨 시어머니인 신명례씨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고령의 시어머니와 자녀, 손주까지 보듬어주는 역할을 한다. 신명례씨의 지극 정성스런 효심은 이웃들도 잘 알고 있고, 귀감이 된다. 신씨는 올해 춘천 서면인의날 행사에서 효부상을 받았다. 2007년에는 춘천시장상을 받기도 했다.

김덕기씨는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며 집안의 기둥역할을 한다. 그러면서도 귄위를 내세우기보다 다정다감하고 유머러스한 면이 다분해 손주들에게는 친구같은 할아버지로 각인된다. 진성씨와 영숙씨에게 “자랑할게 있나요”하는 질문에는 “내세울 게 없어요”하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어르신들께 근심 걱정 끼쳐드리지 않으려 열심히 노력한다는 답변을 내놨다. 4대 가족의 구성원 다운 대답이었다.

진성씨의 보물인 지수와 현수 형제는 애교와 재롱으로 똘똘 뭉친 개구쟁들이다. 아이들의 재롱잔치는 조용했던 집을 웃음꽃 피우는 집으로 변모시켰다. “아이들이 어르신들과 함께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어른을 먼저 챙기는 예의바른 아이로 자라고 있는 것이 참 대견스러워요.”

꼭 두 해 전까지 건강하셨고 마실도 자주 나가셨던 백춘원 할머니는 집에서 다친 이후로 거동이 불편하다. 백 할머니의 건강이 이들 가족 모두의 걱정이다. 정작 백 할머니는 본인의 건강 생각보다는 증손주들의 재롱에 눈을 떼지 못하고 얼굴에 늘 미소를 담고있다. 몸이 많이 약해졌다 하지만, 늘 식사자리에서 한그릇을 너끈히 비우신다고 한다. 식사자리에서의 신명례씨의 눈길은 항상 시어머니의 수저에 가있는 것도 배려의 한 모습으로 비춰졌다.

이들 가족의 대화법이 궁금했다. 무엇보다 세대 간 갈등이라는 게 없었는지, 만일 있다면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알고 싶었다.

배려와 사랑이 묻어나는 가족의 힘은 역시 대화에서 나왔다. 김씨부부의 집에서는 변치않는 전통이 있다. 바로 아침식사는 꼭 다같이 할 것.

어지간히 바쁜 일이 있어도 아침 밥상에는 꼭 7명의 가족 구성원이 모두 모인다. 아침 밥상에서는 별난 얘기들이 쏟아진다. 그래서 서로의 사정을 알고 배려해 주는 소통의 창구가 된다.

영숙씨가 말했다. “저희 시부모님은 저희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시는 것이 거의 없으셔서 세대 갈등이란 게 없어요. 솔직히 30년 간 다른 가풍에서 살다가 함께 지내다 보니 친정과 시댁의 문화차이로 인해 결혼 초기 어려움이 많았죠. 친정에서는 큰 문제가 될 게 아닌데도 시댁은 작은 것조차 서로 의견을 나누고 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되니 서로를 이해하고 챙기게 돼요.”

4대가 같이 살고 있는 이들은 제일 중요한 요소로 혈연관계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관계라는 얘기다. 결국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대화가 늘고, 서로 도우며 배려가 몸에 익히게 되는 게 이들 가족을 통해 본 대가족의 장점이었다. 이와 함께 자연스럽게 형성된 규칙적인 생활습관과 내리사랑이 바탕이 되는 자녀교육은 건강한 생활과 자녀들의 건전한 자아를 갖게 되는데 큰 교훈이 된다.

4대가 함께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은 단점보다 장점이, 갈등보다는 웃음이, 걱정보다는 서로를 위하면서 아끼는 마음이, 상처를 주기보다는 위로받고 슬기롭게 대처해 가는 모습이 돋보였다.

허남윤기자 paulhur@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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