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우상호 강원지사 후보가 강원특별자치도의 새로운 수장 자리에 올랐다. ‘조정과 수습의 달인’이라고 평가 받는 그는 이재명 대통령의 초대 정무수석으로서 비상 계엄 이후 국가 회복에 앞장 서왔다. 민주당은 고향으로 돌아와 ‘강원도의 희망’이 되겠다는 그를 전국에서 1호로 공천했다. “강원도를 완전히 새롭게 바꾸겠다”는 우상호의 결과는 성공이었다.
■철원에서 태어나 시인을 꿈꾸던 청년=1962년 12월12일 철원의 보수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유년은 지독히 가난했다. 철원 동송초교를 다니다가 서울 미아리로 이사 가던 날, 돈이 없어 완행버스에 살림살이와 무거운 솥단지까지 실었다. 누나의 코트를 줄여 입고 전학 간 첫날, 아이들의 비웃음을 견뎌야 했던 수줍은 소년에게 위로가 된 것은 공부와 문학이었다. 연세대 국문과에 입학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는 투사가 아니라 시인을 꿈꿨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있었지만 시를 포기할 수 없어 스스로를 ‘회색분자’라 부르며 문학 활동에 몰두했다. 하지만 등록금을 감당하지 못해 입대한 군대에서 삶의 방향이 크게 달라졌다.
■부채의식으로 든 깃발, 광장의 혁신가=군 복무 중 들려온 절친 박래군의 강제 징집 소식이 그를 깊은 고민에 빠뜨렸다. 스스로에 대한 부채의식 끝에 제대 후 자발적으로 운동권의 길을 선택했다. 시대의 아픔을 외면한 채 시만 쓸 수는 없다는 결단이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 된 그는 투쟁 방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문학적 감수성을 담은 그의 연설은 기존의 딱딱한 구호 대신 유머와 진심을 담았고, 학생들뿐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까지 광장으로 이끌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영입, 1,300표차의 낙선=김대중 대통령의 영입으로 정계에 들어섰지만, 첫 선거에서 1,300여 표 차이로 낙선하며 4년간 원외 생활을 했다. 돈도 권력도 없던 시기, 정치의 본질을 몸으로 배웠다. 함께 울어주던 평당원들과 월급을 나눠가며 버텨준 동지들을 통해 ‘낮은 곳을 향하는 정치’를 깨달았다. 이후 국회의원이 되어 서울 서대문 안산 자락길을 조성했을 때,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내 손으로 산에 오른 건 처음”이라며 흘린 눈물을 보며 정치의 의미를 다시 확인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끈 수습의 달인=17·19·20·21대 국회의원을 역임하는 동안 그는 수습과 조정의 달인으로 평가받았다. 20대 국회 임기 중 123석의 야당 원내대표로서 122석의 여당 의원들을 하나하나 설득해, 234표의 가결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냈다. 2022년 대선 패배 후 대혼란에 휩싸인 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탁월한 수습 능력을 발휘했다. 3개월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당 지지율을 15%이상 끌어올리며 위기에서 당을 구해낸 비대위원장이라는 평가와 함께 박수를 받으며 물러났다. 이후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정무수석에서 강원지사 당선까지=시민으로 돌아갔지만, 정국이 그를 다시 불러냈다. 12·3계엄 정국의 수습에는 노련한 정치적 조정 능력이 무엇보다 필요했고, 이재명 대통령의 요청으로 정무수석을 맡았다. 8개월간 임기를 수행하며 국가 정상화에 힘을 보탰다. 임기를 마친 그는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강원도의 잠재력을 새롭게 발굴해 변화를 이끌겠다는 일념 하나를 품에 안고 고향에 왔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강원도가 특별해지는 순간’을 외쳤고, 도민들의 화답으로 도지사에 당선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