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림픽 슬로건이 문장을 통해 올림픽 대회의 이상과 가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반면, 엠블럼(Emblem)은 간결한 디자인으로 대회의 주제를 압축해 상징한다.
엠블럼을 가장 먼저 사용한 동계올림픽은 제3회 대회인 미국 레이크 플래시드 대회(1932년)다. 초기에는 산이나 태양 이미지를 디자인에 삽입하는 등 직관적인 형태를 보인 것이 특징이다. 엠블럼과 포스터의 이미지를 함께 사용한 대회가 많았고,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회(1964·1976년)처럼 형태를 조금 바꾸는 것으로 알뜰하게 재활용한 경우도 있다.
대회가 거듭되고 현대적인 디자인 개념이 도입되면서 엠블럼은 기호나 암호같은 상징성을 띠는 형태로 변화한다. 각 디자인에는 숨겨진 의미, 함축된 의미들이 이식되기 시작했다. 유행처럼 개최국가나 도시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눈'과 함께 결합하는 방식의 디자인을 많이 선보였다.
사라예보 대회(1984년)는 지역 특산물인 자수 패턴으로 눈송이를 형상화했다. 캘거리 대회(1988년)는 오각형의 기하학적인 무늬를 통해 눈송이와 캐나다의 상징인 메이플(단풍잎)을 묘사했다. 릴레함메르 대회(1994년)는 오로라와 눈의 결정을 나타냈고, 토리노 대회(2006년)는 건축물 몰레 안토넬리아나의 지붕 모습을 형상화하고 푸른 하늘과 흰눈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의 엠블럼 디자인은 역대 동계올림픽 엠블럼 중에서 가장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개최도시인 평창의 초성 '피읖(ㅍ)'과 '치읓(ㅊ)'을 사용한 것. 'ㅍ'은 하늘과 땅, 사람들이 어울린 축제의 장을 표현했고, 'ㅊ'은 눈과 얼음, 동계스포츠 스타를 형상화했다. 자국의 고유한 문자를 엠블럼 디자인으로 활용한 것은 전무후무하다.
오석기기자 sgtoh@kw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