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

[언중언]‘타지 않는 숲’

매년 이맘때면 산불 악몽이다. 특히 선거가 있는 짝수 해에 대형 산불이 발생해 주민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시작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15대 총선이 있었던 그해 4월에 고성에서 산불이 발생해 산림 3,762㏊가 잿더미로 변하고 마을 주택 227채가 불에 타 주민 200여명이 집을 잃었다. 지방선거가 치러진 1998년에도 강릉과 동해에서 산불이 났다. 제16대 총선이 실시된 2000년 4월에는 고성, 삼척, 경북 울진까지 백두대간 2만3,913㏊가 초토화돼 축구장 면적(0.714㏊)의 3만3,491배에 달하는 산림이 소실됐다. ▼2004년 총선 때는 속초 청대산과 강릉 옥계에서 산불이 났고, 2018년 지방선거 해에는 2월과 3월 삼척과 고성에서 불이 났다. 짝수 해는 아니지만 바로 직전 대선이 있었던 2017년 5월에는 대선 투표일을 사흘 앞두고 강릉과 삼척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산불이 날 때마다 우리는 산불 진화에 절대적인 초대형 헬기를 더 확보하고 피해지역 조림 시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 대신 활엽수 등 불에 강한 수종으로 바꿔야 한다는 등 다양한 처방전을 내놨지만 돌아보면 별로 나아진 건 없다. 산림청이 보유한 헬기 중 한꺼번에 실을 수 있는 물의 양이 8,000ℓ에 달하는 초대형 헬기는 6대뿐이어서 동시다발적인 산불이 나면 허둥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야간 산불 대응을 위한 헬기는 1대밖에 없어 밤새 날뛰는 화마 앞에서 손도 못 쓴 채 날이 밝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생명다양성재단의 최재천 교수는 “수령이 오래된 나무가 많은 성숙한 숲은 불이 나도 잘 타지 않는다”고 말했다. 숲이 성숙해질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이 시대 과제다. 발화 제공자만의 책임일 수는 없다.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산불에 접근하는 정치인과 실무자 및 시민들이 늘어나야 할 것이다. 숲과 좋은 관계를 맺을수록 악몽의 반복도 줄어든다. 4·10 총선을 앞둔 이 시점에 과거 산불 악몽이 크게 오버랩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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