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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일반

[메트로폴리탄 뉴욕]못다한 이야기19.따뜻한 봄날의 화려한 추억, 브루클린 보타닉 가든

뉴욕 대표 봄 행사…브루클린 보타닉 가든 벚꽃 축제
1910년 개장, 매년 90만 이상 관광객 찾는 도심 공원
인근 유서 깊은 박물관 브루클린 뮤지엄도 볼거리

처음 뉴욕사무소로 발령받았던 계절이 2월, 겨울이 한창이었던 때라 도착 첫날 존 에프 케네디 공항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가족과 떨어져 단신으로 부임했던 터라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고 외롭기만 했는데, 약 두 달쯤 지났을까, 화사한 뉴욕의 봄을 맞이하고부터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뉴욕살이에 갑자기 친숙하게 되었던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돌이켜 보면 주말 벚꽃 축제가 한창이던 어느 따뜻한 봄날 브루클린 보타닉 가든(Brooklyn Botanic Garden) 축제를 다녀온 것이 뉴욕을 빠르게 좋아하게 된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던 것 같다.

브루클린 보태닉 가든_축제

브루클린 보타닉 가든의 벚꽃 축제는 뭐랄까. 굉장히 따뜻한 느낌을 준다. 화려한 대규모 페스티벌이라는 거창함을 느끼게 하면서도 마치 동네잔치인 것 같은 편안함을 준다. 뉴욕 도심에서 약간 벗어난 브루클린 한 구석 조용하면서도 평화로운 자연미가 살아있는 이 공원은 뉴욕이면서도 뉴욕이 아닌 것 같은 시골스러움이 사람들을 편안하게 이끈다. 게다가 벚꽃이라는 이국적인 화종(花種)이 만개한 너른 잔디밭을 걷고 있노라면 여기가 미국인지, 일본인지, 아니면 그 어딘가인지 모를 정도로 이색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추웠던 겨울을 뒤로 하고 화사하고 따스한 봄볕이 찾아드는 계절, 가족, 연인,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걷고, 눕고, 떠들고, 놀고, 구경하는 사람들 모습을 보다 보니 새로운 곳에서 잔뜩 긴장되어 있던 내 마음의 근육이 나도 모르게 슬슬 풀리면서 서서히 이곳 생활에 적응해 가는 나를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 뉴욕에서 살고 있구나, 뉴요커로 이들과 자연스레 어울리며 살 수도 있겠다는 안도감과 약간의 자신감이 스며들었던 것 같다. 언제 생각해도 당시 그 느낌은 대단히 따뜻하고 편안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브루클린 보태닉 가든_전경

1910년 개장한 이 식물원은 매년 9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드는 도심 속 공원으로 약 14,000여종의 다채로운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여러 개의 테마 정원과 다양한 온실, 연못, 박물관 등으로 이루어지 있다. 규모만 놓고 보면 뉴욕 최대인 브롱크스 뉴욕식물원(New York Botanical Garden)보다 작지만, 가든의 다채로움이나 이국적인 면에 있어선 가히 비교불가할 만큼 개성이 뚜렷하다. 3월 목련, 4월 벚꽃, 5월 모란과 스패니시 블루벨, 6~7월 수국 등 사계절 제각기 아름다움을 뽐내는데, 특히나 4~5월 봄날의 벚꽃(Cherry blossom) 축제가 매우 유명하다. 뉴욕에 웬 벚꽃 축제? 하고 의아해할 수도 있지만, 미국 대도시엔 생각 이상으로 벚꽃이 많이 심겨 있고 소위 체리블러썸(벚꽃) 축제를 여는 곳도 많다. 그건 2차대전 후 미국에 이민 온 일본이민 1세대들의 커뮤니티가 크게 형성되면서 그들의 국화(國花)인 벚꽃이 많이 심어진 까닭도 있다고 한다. 벚꽃 축제 입장료는 가든 입장료와는 별도로 내야하고 사람들도 붐벼서 주말 아침 일찍부터 서두르지 않으면 줄 서는데 시간을 다 허비할 수도 있을 정도인데, 특히나 시즌 중에는 벚꽃의 만개 정도가 가든 홈페이지에 매일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미리 잘 확인하고 가장 좋은 타이밍을 골라 방문하는 것도 좋은 팁이다.

브루클린 보타닉 가든_제패니즈 힐

가든 입구를 들어서서 조금 걷다 보면 아주 넓은 광장이 나온다. 이곳이 화려한 겹벚꽃(Prunus Kanzan)으로 유명한 체리 에스플러네이드(Cherry Esplanade)이다. 너른 잔디밭 양옆으로 벚꽃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잔디밭에 앉거나 누워 따스한 봄 햇볕을 즐기는 뉴요커들을 보고 있노라면 평화로움이란 이런 게 아닐까 느껴진다. 보타닉 가든 내 또 하나의 명소는 일본식 정원을 흉내 낸 제패니즈 힐 앤 폰드 가든(Japanese Hill-And-Pond Garden)이다. 1914년 일본인 건축가 Tacko Shioto에 의해 지어진 정원으로 일본 밖에 지어진 일본식 정원으로는 가장 오래된 곳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정원 주변으로는 땅이나 연못에 닿을 듯 길게 늘어뜨린 벚꽃 가지들이 아름드리 그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브루클린 보타닉 가든을 이국적으로 만드는 가장 인상적인 스폿이라 할만 하다.

브루클린_Sakura Matsuri

봄에 찾는 브루클린 보타닉 가든에서는 꼭 놓치지 말아야 할 행사가 하나 있다. 바로 뉴욕 거주 일본 커뮤니티가 주최하는 일본 전통축제 ‘사쿠라 마츠리(Sakura Matsuri, 벚꽃축제라는 뜻)’이다. 어떤 선입견 없이 벚꽃이 일본의 국화(國花)이므로 벚꽃축제도 일본인들이 주최하는 페스티벌이겠거니 하고 관람하다 보면 이들 커뮤니티가 준비하고 공연하는 이 행사가 매우 다채롭고 흥미롭게 꾸며졌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기모노 차림의 여성들이 일본 전통극을 노래하고, 농부 의상을 한 남녀들이 모내기 춤을 추는가 하면, 칼춤, 북춤, 가극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하루 종일 공연되는데, 한가로이 벚꽃을 구경하다가 잠시 앉아 공연을 보고, 다시 벚꽃을 즐기다가 다시 앉아 구경하고, 집에서 준비해온 샌드위치를 하나 먹으며 또 구경하고 하면 어느새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공연을 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대부분 뉴욕에 거주하는 일본 이민 3세대 정도 되는 젊은이들인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미 미국인으로 자랐을 법한 이민 젊은 세대가 외국인들 앞에서 고국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행사를 이렇게 매년 꾸준히 하고 있다는 사실부터가 한편으론 놀랍기까지 하다. 지금까지 40년 넘게 이런 행사가 이어졌다고 하니, 해외에 있는 우리 커뮤니티도 외국 현지에서 이런 전통 행사를 하나쯤은 오래도록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루클린 보타닉 가든을 찾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옆 건물이 유명한 브루클린 뮤지엄이기 때문이다. 브루클린 뮤지엄은 맨해튼에 소재한 많은 유명 뮤지엄들에 비해 대중의 인지도는 낮은 편이지만 실상을 놓고 보면 그 어느 곳과 비교해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매우 유서 깊은 박물관이다. 우선 뮤지엄 건물만 보아도 매우 웅장하고 화려한데, 앞서 소개한 보자르 양식 건물 중 대표 건물임을 알 수 있다. 뮤지엄을 관람하면서 느낀 점은 이 박물관이 맨해튼이 아닌 브루클린에 소재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너무 과소평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오롯이 미국의 역사와 문화만을 보고 싶다면 오히려 브루클린 뮤지엄이 원픽(one pick)이 될 수도 있을 만큼 미국의 유물, 미술, 조각 등이 집중적으로 전시되어 있다. 뉴욕을 방문해서 박물관을 살펴볼 계획이 있다면 반드시 들러볼 것을 추천한다. 특히 5층의 미국·유럽 회화관에는 유명 유럽 화가들뿐 아니라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오키프(Georgia O’Keeffe), 에킨스(Thomas Eakins) 등 유명 미국 화가들의 그림이 많이 전시되어 있어 미국의 미술이 그동안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매우 인상적인 전시관이다.

맨해튼이 오랜 핫플레이스들로 가득한 전통의 강호라면 브루클린은 떠오르는 핫플레이스들로 가득한 신생 명문이다. 브루클린 브리지로부터 시작해서 다채로운 브런치 카페, 각종 빈티지 숍 등 젊은 세대들이 많이 찾는 다양한 스폿이 가득한 곳으로, 뉴욕 핫플의 미래는 점점 맨해튼에서 브루클린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여기에 관광의 포인트가 점점 기존의 ‘보는 것’에서 ‘체험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다양한 행사를 직접 체험하고자 하는 관광수요가 계속 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브루클린 보타닉 가든의 벚꽃 축제는 최근 트렌드에도 잘 맞는다. 이 유니크한 가든에서의 체험이 하루를 온전히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이국땅 뉴욕에서의 풍성한 추억거리를 선사해 줄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최재용 한국은행 강원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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