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1대 대선 공식 선거운동이 후반전으로 접어든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인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이 후보는 노 전 대통령 추도식을 계기로 '민주 정부'를 계승하는 정통성을 부각하며 지지층 결집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김경수 총괄선거대책위원장 등과 함께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이 후보는 노 전 대통령 비석인 너럭바위에 헌화했다.
이 과정에서 이 후보가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닦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 후보는 '노 전 대통령 묘역 참배 후 눈물을 훔쳤는데, 무슨 생각이 들었나'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요즘 정치가 정치가 아닌 전쟁이 돼 가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며 "상대를 제거하고 적대하고 혐오하면서, 결국 통합이 아니라 국민에 피해를 주는 양상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는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 기본인데, 상대를 제거하려는 잘못된 움직임이 역사적으로 여러번 있었다"며 "희생자 중 한 분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정치상황을 보면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하는 최악이 돼 버려 여러 감회가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 후보는 "노 전 대통령은 정치검찰에 탄압돼 서거하셨다.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셨고 대한민국 정치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 한미 FTA를 통해 대한민국이 세계로 진출할 계획도 만들었다"며 "5월 23일이 될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국민이 존중받는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다짐했다.
이 후보는 권양숙 여사와의 만남에 대해서는 "(권 여사는) 건강해 보이셨다. '국민의 힘으로 희망이 있지 않겠느냐'는 격려를 했다"고 전했다.
최근 여론조사 후보 지지도 결과 추이에 대해서는 "후보 입장에서는 언제나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답했다.
이 후보는 방명록에는 "사람 사는 세상의 꿈. 국민이 주인인 나라, 국민이 행복한 나라, 진짜 대한민국으로 완성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 후보는 봉하마을 방문에 앞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득권에 맞서고 편견의 벽 앞에서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노무현의 꿈, 지역주의의 산을 넘고 특권과 반칙의 바위를 지나 민주주의라는 바다를 향해 나아간 큰 꿈, 이제 감히 제가 그 강물의 여정을 이으려 한다"며 "위기의 대한민국을 새롭게 하는 무거운 책무지만, 위대한 우리 국민과 함께 해 낼 것"이라고 적었다.
이어 "노 대통령님이 우리 곁을 떠난 지 16년이 흘렀지만 그리움은 더 깊어져 간다. 우리는 모두 당신을 떠나보내지 못한 채 미완의 꿈을 붙잡고 있다"며 "개인의 안위보다 정의를, 타협보다 원칙을 고집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길이 제 길이 됐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노 대통령님은 저 이재명의 길을 만드는 데 두 번의 큰 이정표가 돼 주셨다. 개인의 성공과 사회적 책무 사이에서 남모르게 번민하던 사법연수원 시절 노무현 인권 변호사의 특강이 제 인생의 방향에 빛을 비췄다"며 "시민과 함께하는 길이 제가 가야 할 길임을 알게 됐다"고 떠올렸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의) 정치개혁은 제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됐다. 정치자금법 개정 및 투명한 공천제도 개선으로 '돈 선거'의 병폐를 끊었다"며 "2006년 성남에서 시민운동을 하던 이재명이 지방선거 출마를 결단한 것도 그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대통령께서 즐겨 말씀하신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문장을 되뇔 때마다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된 순간들이 떠오른다"며 "돈과 연줄이 아닌, 진심이 있다면 얼마든지 정치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 노무현 대통령, 저는 등대지기 노무현 희망의 빛을 따라 지금 자리에 서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노무현 대통령께서 꿈꾸던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한 여정, 지역 균형 발전을 이루고,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 특권과 반칙이 없는 사회, 국민이 주인 되는 '진짜 대한민국'에 가서 닿겠다"며 "오늘의 절망을 딛고 내일의 희망을 일구어 나가겠다. 강물은 끝내 바다에 이를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 후보는 끝으로 "'노무현은 없지만 모두가 노무현인 시대', '깨어있는 시민'들의 상식이 통하는 사회, 국민이 주인인 나라, 모두가 함께 잘사는 대동 세상을 만들겠다"며 "잠드신 그곳에서도 민주주의의 바다에 닿아 평안하시길 바란다"고 했다.

이 후보는 이어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와 오찬을 함께 하기로 했다. 이 자리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 부부도 참석할 예정이라고 민주당이 전했다.
이 후보가 문 전 대통령을 만나는 것은 지난 1월 당 대표 재임 시절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아 예방한 이후로 약 4개월 만이며, 대선 후보로 선출된 후로는 처음이다.
이 후보의 이날 행보는 조기 대선을 11일 앞둔 상황에서 당내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 진영과의 접촉면을 넓히며 지지층을 최대한 결집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이날 오찬에는 이 밖에도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 씨, 우원식 국회의장 부부, 이해찬 전 국무총리 부부, 김경수 전 경남지사 등이 함께 한다.

한편, 민주당은 이날 노 전 대통령 애도를 위해 노래에 맞춘 율동을 일시 중지하는 등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선거 운동을 진행했다.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윤호중 총괄본부장은 전국 지역위원장 대상 공지를 통해 "오늘은 노 대통령님 서거일로, 율동을 중지하고 경건하고 겸손한 자세로 선거 운동에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한민수 대변인도 여의도 당사 브리핑에서 "선거 운동 기간이지만 차분하고 엄숙한 가운데 노 대통령님을 기리는 하루를 보내겠다"고 전했다.
이 후보는 전날 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에서 집중 유세를 펼쳤고, 노 전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원로 인사 송기인 신부와 차담했다.
선거 후반부로 갈수록 진영 결집 양상이 선명해지는 흐름인 데다, 국민의힘 김문수·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단일화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어 민주당으로서도 지지층 결집이 더욱 절박한 상황이다.
김민석 상임총괄선대위원장은 이날 SBS 라디오에서 "쫓아오는 측에서는 막판 단일화 등을 통해 뒤집어 보거나, 아니면 최대한 (격차를) 좁혀 대선 패배 이후 정치적 입지를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돼 있다"며 "저희로서는 방심하지 않고 있다. 마지막까지 아주 신중·겸손하게 하는 것이 대원칙"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