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세 사랑에 빠지거나
경멸의 대상 되게하는
소설 도입부의 첫인상
지선 앞두고 나뉜 평가
검증 없어 오류도 많아
'맹신'과 '편견' 버려야
몬태규 가문의 로미오는 원수 사이인 캐퓰렛 가문이 개최한 연회에 가면을 쓰고 몰래 참석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줄리엣과 조우한다. 로미오는 그런 줄리엣의 모습을 보고는 첫눈에 반하고 사랑을 속삭이던 두 사람은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년)의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한없이 낭만적으로 보이는 장면이지만 비극의 씨앗이 잉태되는 순간이다.
19세기 영국, 베넷 집안의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무도회에 참석하고 소극적인 성격의 남성 다르시를 만나게 된다. 다르시는 주변에서 파트너가 부족해 춤을 추지 못하고 있는 엘리자베스와 춤을 출 것을 권유하지만 끝내 거절한다. 엘리자베스는 다르시의 모습에 자존심이 크게 상하게 된다. 제인 오스틴(1775~1817년)의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다르시에 대한 엘리자베스의 편견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장면이다.
영국 BBC가 지난 1,000년간 최고의 문학가를 묻는 설문에서 각각 1위(셰익스피어)와 2위(제인 오스틴)에 이름을 올린 작가들이 소설 도입부에서 설정한 첫인상에 대한 서로 다른 이야기다.
때로는 금세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이내 처절한 경멸의 대상을 만들어 버리기도 하는 게 첫인상인 것 같다. 적어도 이 두 작품을 보면 말이다.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에 이어 이제 겨우 열흘도 남지 않은 지방선거 정국을 지나치며 마주친 수많은 첫인상과 함께 아주 강렬하게 떠오른 감정도 그렇게 두 가지로 갈린다. 만약 줄리엣이 원수 가문의 딸이라는 것을 로미오가 미리 알았다면 어땠을까. 만약 다르시가 성격이 소심할 뿐 오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 먼저 일러줬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첫인상에는 그리 많은 정보가 있을 리 없다. 말 그대로 첫눈에 느껴지는 인상(印象·어떤 대상을 보거나 듣거나 했을 때, 그 대상이 사람의 마음에 주는 느낌)이니까. 요새 표현으로 ‘느낌적 느낌'이랄까.
그렇다면 이제 막 맞닥뜨렸을 때의 인상에 더해 시간을 갖고 수많은 정보와 검증이 오가는 정치 분야는 상대적으로 오류가 많을 수 있는 첫인상 평가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단언컨대 아닐 것이다. 일부 언론의 편협된 시각, 가짜뉴스, 의도된 조작, 검증을 부정하는 내로남불의 오만이 정파적 색깔과 파워를 등에 업고 ‘확증편향'이라는 뫼비우스의 띠에 안착, 엄청난 높이와 두께의 ‘맹신'과 ‘편견'의 벽으로 더욱 공고화되기 때문이다. 여(與)와 야(野)가 그리고 있는 통합과 협치라는 이름의 그럴 듯하게 포장된 평행선은 그렇게 어느 한구석 맞닿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서로를 멀찌감치 밀어내고 각자의 방식, 방향으로 폭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의 지적 쯤은 안중에도 없는 마이 웨이(My way) 정치가 횡행하는 것 아닌가.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남성 중심의 정치 문화 속에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가졌고, 주류인 서독이 아닌 동독 출신인 데다 이혼녀라는 정치적 첫인상과 함께 총리직을 수행했다. 그리고 4선에 성공하며 16년간 독일 총리직을 수행했다.
퇴임을 결정했을 때 그의 지지율은 70~80%에 육박했다고 한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 않는 것은 물론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포용하는 특유의 엄마 리더십, ‘메르켈리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만일 우리의 정치문법에 메르켈 전 총리를 대입한다면 어떨까. 첫인상에서 느낀 너의 ‘오만'이 결국은 나의 ‘오해'에서 비롯된 ‘편견'이었다는 쿨한 인정, 반성과 수정이 나올 수 없는 우리의 정치지형을 이제는 고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래야 우리 정치사의 비극이 되풀이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오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타계 13주기 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