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청봉]‘4·10 총선’ 슬로건 정치의 허와 실 바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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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영 화천주재 국장

4·10총선을 앞두고 불꽃 튀는 접전이 벌어지고 있다. 도내 8개 선거구에 나서는 후보들이 매일 슬로건을 쏟아 놓으며 표심 쟁탈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미디어 노출 빈도 역시 부쩍 늘었다. 강원일보에 보도된 후보들의 자기소개서를 보면 유권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포장한 이미지와 압축된 슬로건이 엿보인다. 전문 인력까지 기용, 이미지를 연출하며 선거 승패에 치명적 영향을 주는 중도·무당파층과 같은 스윙 보터를 자극하고 있다.

현대 정치는 이미지 정치다. “미디어는 대중으로 하여금 어떤 이슈에 주목하도록 할 뿐 아니라 정치적 인물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를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가 1997년 이후 세 번의 총선을 승리로 이끌면서 10년간 수상으로 재임한 것은 대중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만든 게 주효했다. 당시 ‘영국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대접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구호를 내세우며 ‘새로운 영국’ ‘제3의 길’과 같은 수사로 표심을 사로잡았다.

미국 대선에서 1952년 아이젠하워와 스티븐슨이 대결할 때도 이미지 정치가 사용됐다. 아이젠하워는 군인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20~60초 길이의 스폿광고를 사용했다. 1976년 카터는 소박하고 서민적인 땅콩 농장 주인의 모습을 부각했고, 1992년 클린턴은 부시를 누를 때 경제 문제를 파고들었다. 2016년 트럼프의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는 상대 후보를 압도했다. 옐친은 1996년에 러시아인들이 계급투쟁을 싫어하는 점을 공략, 재집권에 성공했다.

우리나라 대선도 슬로건 대결이 치열했다. 1963년 박정희는 ‘새 일꾼에 한 표 주어 황소같이 부려보자’는 표어로 유권자에게 어필했다. 1988년 노태우는 ‘보통사람’이라는 탈권위의 슬로건을 짜냈다. 1992년 김영삼의 주된 정치광고 콘셉트는 ‘신한국 창조’였다. 2002년 노무현은 ‘기타 치는 대통령’ ‘새로운 대한민국’ 편이 유권자의 감성을 자극했다. 2007년 이명박은 ‘경제대통령’을 슬로건으로 ‘국밥집 할머니’와 같은 서민적 기법으로 설득했다.

총선 후보들의 수사 전략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중앙서 통하는 실력, 불도저 같은 추진력, 듣는 정치, 옳은 판단, 경험 풍부, 목표 뚜렷, 법 전문가, 경제통 등 후보를 한마디로 표현한 함축된 수사가 신문 지면에 넘친다. 여기에다 중진의 연륜, 강한 추진력, 긍정 마인드, 기획력 검증 등 후보의 자질과 자격을 강조하는 응축된 수사 유형도 나온다. 꿈, 도전, 기회, 희망, 미래, 행복, 일자리, 함께, 새로운 등 청년층을 타깃으로 한 키워드도 볼 수 있다. 모두 자신을 좋은 이미지로 포장해 자신을 차별화하는가 하면 자기편을 하나로 모으고 상대 후보의 사기를 꺾으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총선 이슈 프레임 주도 전략도 엿보인다. 총선 정국에서 반미, 친북, 정권심판, 국회심판 등은 여야 공방의 핵심이다. 경제와 복지 등 공공정책 이슈도 빠짐없이 나온다. 8석 전승, 과반 확보 등 도내 특성을 반영한 프레임 전략도 구사하고 있다. 이슈 전략은 유권자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무엇을 생각할지’를 결정해 준다는 점에서 간과할 수 없다. 이런 이슈가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긍정 혹은 부정 태도를 조장해 유권자의 투표 선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게 사실이다.

선거가 23일 앞으로 다가왔다. 주민들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수많은 자극을 받고 있다. 물론 이 자극을 모두 수용할 필요는 없다. 우리 선거 풍토에서 슬로건이나 공약이 후보자와 유권자 간 신뢰의 상징이라는 데에는 여전히 회의적 입장이 팽배하다. 연일 쏟아 놓는 슬로건과 공약이 선거 정치의 장식품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의도된 이미지와 의제를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포장된 슬로건의 허와 실을 살피는 것은 결국 유권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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