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 발발 이후 정체가 확인되지 않은 한 단체가 서유럽 주요 도시에서 잇따라 발생한 사건의 배후를 자처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4일 보도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단체는 ‘아샤브 알야민’ 또는 ‘하라캇 아샤브 알야민 알이슬라미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3월 9일 이라크의 친이란 무장단체와 연계된 것으로 추정되는 텔레그램 채널에 처음 등장해 “전 세계 미국·이스라엘 이익집단에 대한 군사 작전을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이후 이 단체는 서유럽에서 벌어진 여러 사건의 배후를 잇달아 주장했다. 선언 이틀 뒤에는 벨기에 리에주의 유대교회당 화염병 투척 사건의 배후를 자처했다. 이어 13일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유대교회당, 14일 암스테르담의 유대인 학교가 공격을 받았고, 20일에는 네덜란드 헴스테더 유대교회당 공격이 미수에 그쳤다. 당시 다비트 판베일 네덜란드 법무장관은 의회에서 이란 연계 가능성을 분명히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23일에는 영국 북런던 유대인 공동체에서 의료봉사단체가 운영하는 구급차 여러 대가 방화 피해를 입었다. 아샤브 알야민을 대표해 배후를 주장한 텔레그램 채널들은 과거 이란 정부 선전성 게시물을 올린 전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금융권을 겨냥한 사건도 이어졌다. 28일에는 미국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프랑스 파리 사무소 앞에서 사제 폭탄이 발견됐고, 이 여파로 시티은행과 골드만삭스 등 다른 미국계 은행의 파리 직원들까지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앞서 16일에는 뉴욕멜론은행의 암스테르담 지점도 유사한 공격 대상이 됐으며, 이 단체는 이 사건 역시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이 조직의 실체를 둘러싼 의문은 여전히 크다. 싱크탱크 국제대테러센터의 율리안 란체스 연구원은 “3월 9일 이전에는 온·오프라인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며 “이처럼 갑작스럽게 등장한 조직은 드물다”고 지적했다. 이어 “실제 오프라인 조직이나 내부 체계를 갖춘 테러단체인지 상당한 의문이 든다”며 “이란 정보기관의 프로젝트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각국 수사당국도 이 단체가 실제 배후인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으나 아직 단정적인 결론은 내리지 못한 상태다. 런던 구급차 방화 사건과 관련해 영국 경찰은 지난 3일 19세, 20세 영국 국적자와 17세 영국·파키스탄 복수국적자를 방화 혐의로 체포했다고 밝혔지만, 아샤브 알야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사남 바킬 채텀하우스 중동·북아프리카 프로그램 국장은 이란이 과거 해외 반체제 인사들을 괴롭히거나 해치기 위해 범죄조직을 활용한 전례가 있다며, 이번 사안 역시 그 방식이 더 확장된 형태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 주재 이란대사관은 “책임감 있는 국가인 이란은 언제나 내정 불간섭 등 국제법 원칙을 존중한다”며 “영국 내 특정인에 대한 불법 행위에 연루됐다는 어떤 의혹도 부인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럽 내에서는 이란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전후 유럽 내 하이브리드전과 유사한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파리 BoA 사건의 경우 프랑스 르몽드는 10대 피의자 3명 가운데 1명이 스냅챗을 통해 범행을 사주받았으며, 한 20대 남성이 여자친구에게 복수하려 한다는 명목으로 폭발물 설치와 촬영 대가로 500∼1천유로를 제시했다고 전했다.
란체스 연구원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적은 비용으로 이른바 ‘일회용 요원’을 고용하는 방식이 러시아식 하이브리드전과 닮아 있다며, 유럽 내 하이브리드전의 핵심 목표는 사회 불안과 혼란을 조장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